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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성장영화, 그 이상 <점프 아쉰>
김성훈 2012-04-18

또 체조다. 아직 국내 영화팬들에게 생소한 이름인 대만의 린유쉰 감독은 첫 번째 장편다큐멘터리 <점프 보이즈>(2005)를 통해 체조선수 출신인 친형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현재 체조 코치인 형의 제자들이 주인공이었던 <점프 보이즈>와 달리 <점프 아쉰>은 형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포츠 성장영화다. “형은 언제나 내 우상이었다. 늦은 밤 귀가한 형이 종종 핏물로 물든 욕조에 몸을 누인 모습을 욕실 거울을 통해 목격하곤 했다”는 감독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린유쉰 감독에게 형은 대단한 영감을 주는 존재인 건 분명하다.

아쉰(펑위옌)은 머릿속에 체조밖에 없는 고등학교 체조선수다. 그러나 아쉰의 어머니는 집안일을 소홀히 하고 어릴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성치 않은 아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아쉰이 체조를 그만두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배운 거라고는 체조밖에 없는 그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과일가게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친구 피클(로렌스 코)과 뒷골목을 방황하던 중 그는 어떤 사건에 휘말려 고향을 쫓기듯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대도시 타이베이 역시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쉰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흔한 성장드라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장애와 방황을 극복하고 다시 꿈을 꾸는 줄거리는 여느 스포츠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점프 아쉰>은 상업영화로서 갖춰야 할 미덕이 분명 있다. 동네 다리와 당구장에서 유려하게 펼쳐지는 아쉰의 애크러배틱한 액션은 성룡의 초기작을, 타이베이 뒷골목을 방황하는 아쉰과 피클은 <천장지구>를 비롯해 수많은 홍콩영화 속 청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만의 청춘스타 펑위옌과 아쉰에게 삐삐 메시지를 전달하는 ‘599’역 을 맡은 임진희의 멜로 라인은 소소한 양념이다. 스포츠 장르를 비롯해 성장드라마, 멜로, 액션, 누아르 등 다양한 장르의 특징들을 감독은 1990년대 대만의 풍경과 잘 버무린다. 무엇보다 성장드라마로서 손색이 없는 건 문제를 대하는 아쉰의 태도이다. 아쉰은 어두운 터널을 두번 지난다. 고향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만난 터널이 아쉰에게 절망감과 도망가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면, 대도시 뒷골목을 겪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만난 터널은 직접 부딪히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도망가고, 부딪히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아쉰의 태도는 관객을 충분히 공감하게 할 것이다. 희망 없는 타이베이에서 현실을 원망하던 친구 피클을 향해 아쉰은 “원치 않은 문제 역시 네가 선택한 거야. 남 탓 하지마”라고 충고한다. 어쩌면 그때 아쉰은 한뼘 더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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