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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거기서 보았다

<오래된 미래>

기간: 6월15일까지 장소: 문화역서울 284 문의: www.seoul284.org

백현진이 그린 <행려도>(行旅圖). 이 그림은 이제 더이상 열차가 오지 않는 서울역 안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문화역서울 284’라는 새 이름을 얻은 옛 서울역사 안에, 더 들여다보면 <오래된 미래>라는 개관 전시 안에 있다. 전시 속 전시인 <미래로 보내는 기억들>(기획 디자이너 안상수)에는 반복적인 물방울로 잘 알려진 노작가 김창열부터 사진가 배병우의 사진, 시인 최승호, 디자이너 문승영 등의 작품이 남다른 방식으로 걸려 있다. 옛 부인대합실, 1~2등 대합실, 플랫폼과 복도였던 곳이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가진 서울역사 내부에 벽을 뚫거나 조명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 그룹 ‘노네임노샵’이 작업을 걸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거나 투광기를 배치하는 등 작품 설치를 함께했다.

백현진의 <행려도>는 화가의 작업실에 있던 이젤 위에 흔들리듯 걸려 있다. 어디 밖에 놀러갔다 온 그림이 방 안에서 우리를 기다렸던 것 같다. 전형적인 미술관 조명 대신에 세개의 투광기가 그림에게 빛을 보낸다. 어딘가 소란스러운 환희의 느낌과 이를 묵중하게 가라앉히게 하는 싸~한 느낌도 있다.

백현진이 서울역을 기억하며 그린 이 그림의 영문 제목은 ‘Homeless Gate’. 그림 안에는 연두색으로 휘갈겨쓴 ‘서울역’이라는 글자가 있고 빨간 OK 모양도 보인다.

<오래된 미래> 전시장 곳곳을 둘러보면서 나이가 지긋한 어떤 관람객은 도슨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처음 서울역에 도착해서 남산에 갔는데 말이야, 별처럼 총총 빛나는 무수히 많은 집들이 산처럼 보였어. 그걸 보면서 그중의 하나가 우리 집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지. 이 넓었던 서울역사에는 볼거리, 생각할 거리, 질문이 넘친다. 붉은색 커튼과 큰 거울이 있는 옛 귀빈실에는 승효상 건축가의 전시 <문화풍경>(사진)이 열린다. 건물로 풍경을 “채우기보다는 비우기”를 꿈꿔온 승효상의 세계를 1920년대 인테리어로 복원된 서울역 안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뭐랄까, 몇겹의 공간을 망원경으로 동시에 보는 기분이다.

1925년 9월30일 경성역이 완공됐고 그해 10월 첫 기차가 떠났다. 2004년 새 서울역 준공 이후 방치된 공간이었지만 역 주변은 늘 붐볐다. 찬송가 소리가 들리고 비둘기가 있고 남자들이 있고 여자들도 있다. ‘구(옛)’ 자를 이제는 빼버릴 수 있을까. 지금 어디로 출발하는 첫 기차도 없는데 이곳은 사람들을 도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