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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의 17년을 말하다
주성철 사진 백종헌 2012-04-26

명필름은 <씨네21>처럼 올해로 17주년을 맞게 된다. 이은, 심재명 대표가 결혼한 이듬해 1995년 창립작으로 <코르셋>(1996)을 만들면서 <접속>의 장윤현 감독, <조용한 가족>(1998)의 김지운 감독 등 신인감독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도 했고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바람난 가족>(2003) 등을 제작하며 각각 어느덧 ‘칸 패밀리’가 된 박찬욱, 임상수 감독의 현재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당장의 ‘트렌드’보다는 ‘책임’과 ‘가치’에 걸맞은 작품들을 추구하는 가운데 충무로에 ‘웰메이드’라는 표현이 자연스레 스며들게 했다.

그사이 변화도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를 제작한 강제규필름과 2004년 통합하면서 ‘MK픽처스’로 변경했다. 이은 대표의 주도로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인 세신버팔로와 계약을 맺고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것. 당시 CJ엔터테인먼트나 시네마서비스, 싸이더스 등 영화 배급사나 제작사가 코스닥에 상장된 경우는 있었지만 영화사가 증권거래소 시장에 진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회상장은 애초에 의도했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있어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고, 2007년 기업 결합이 끝난 뒤에도 2개의 상호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던 중 명필름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2010년부터 다시 브랜드를 명필름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강제규필름과의 통합과 MK픽처스가 명필름의 2기였다면 2007년부터 실질적인 3기가 시작됐다.

▶이은 “투자, 배급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제규필름과 합쳤는데 시장 경쟁이 쉽지 않았다. 한국영화계의 전반적인 상황도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매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2007년부터 MK픽처스에 걸렸던 과부하가 풀리게 됐고 보다 명쾌하고 후련해지고 차분하게 환경을 관망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명필름이 가진 성격이나 비전이 달라지거나 한 건 아니다. 지난 5년여의 시간은 제작에 집중했던 시간들이었고 그 결과들이 최근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회사 초창기에는 주로 내가 일을 벌였고 직접 주도하면서 통과되는 영화들이 많았다면 MK픽처스를 거치면서는 주로 심 대표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제 나는 ‘듣보잡’이다. 친구들은 나보고 늘 ‘너 참 편하게 먹고산다’고 한다. (웃음) ”

▶심재명 “회사 초창기에는 영화인이나 관객 대부분이 명필름을 ‘명계남 회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웃음) 한국영화계와 함께해온 지난 15년의 희소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2년 전 15주년 기념행사를 가지면서 영화들을 극장에서 다시 프린트로 보며 감회가 새로웠고 많은 생각들을 정리했다. 90년대 중·후반 프로듀서의 시대를 거치며 이제는 대기업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어쨌건 우리 취향과 고집이 살아 있는 영화 들을 꾸준히 만들고자 노력했다. 정말 쉬지 못하고 살아왔다. (웃음) 예전에는 제작, 마케팅까지 함께 인하우스 방식으로 꾸렸는데 이제는 제작라인을 아웃소싱하는 등 형식적인 변화도 있었다. 이제는 데뷔 감독과 함께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그들의 취향, 예술적인 상업영화

<건축학개론>은 명필름의 31번째 영화다. 연평균 2편 정도를 만드는 속도인데, 두 사람은 명필름 탄생 20주년이 되는 해 총 40편 정도에 이르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렇게 31번째에 이르기까지 힘든 시간들도 많았다.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당시 JSA 전우회의 거친 항의를 받았고 <그때 그사람들>은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당해 결국 법원으로부터 삭제 판정을 받아서 영화 일부가 삭제된 채 상영됐다. <그때 그사람들> 당시에는 심 대표에게 경호원을 붙여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당대와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흥행성과 작품성이라는 그 경계 위에서 즐거운 줄타기를 해왔다.

그럴 때마다 ‘큰 틀의 영화세계’라는 점에서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그들은 의견이 갈릴 때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한쪽이 지쳐 있거나 자신이 없을 때 어떤 확신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심재명 대표는 <광식이 동생 광태>(2005)를 결정할 때를 떠올렸다. “<광식이 동생 광태> 개발을 어느 정도까지 끝내고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이은 대표가 엄지를 들어올리면서 ‘시나리오는 이쯤에서 끝내도 된다’는 얘기를 했다. 뭔가 두렵고 망설여질 때 혹은 어떤 반대가 있을 때 힘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밀어붙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은 대표가 큰 힘이 됐다.” 반면 이은 대표도 “나의 막연한 아이디어나 생각들이 심재명 대표의 탁월한 기획력으로 모양새를 갖춰갈 때 놀랍다”고 말한다.

거기에 <안녕, 형아>(2005)나 <아이스케키>(2006) 같은 따스한 가족영화, <욕망>(2004)이나 <파주>(2009)처럼 형식파괴적인 멜로드라마들까지 합치면 명필름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정지영 감독과 함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산의 일대기를 그리려 했던 <아리랑>처럼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겨진 영화도 있다. 어딘가 ‘대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명필름으로서는 그에 걸맞은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 지난 시간을 통해 드러나는 명쾌한 기준은 있다. 일단 원작의 영화화가 드물 정도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소재의 발굴과 웰메이드를 넘어 ‘예술적인 상업영화’에 대한 매혹이다.

▶이은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건대 회사 전체의 가치와 지향점을 따져볼 때 개인적으로 꼽는 다섯편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공동경비구역 JSA> <바람난 가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역시 그에 포함될 거라 여겼던 <아리랑>은 굉장히 오래 준비한 작품이라 아쉬움이 크다. 감독님과 함께 중국에도 여러 번 답사를 다녀왔기에 나의 2000년대 초반도 여기에 많이 얽혀 있다. 그러면서 제작자로서 다시 깨달은 점은 역시 ‘문제는 시나리오’라는 거였다. 당연히 끝난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정지영 감독님이 <부러진 화살>을 하기까지 13년 동안 공백으로 계셨던 데는 명필름의 책임도 크고 해서 <부러진 화살>을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웃음)”

▶심재명 “분명한 건 정말 마초영화나 호러영화는 못 본다.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는 DVD로도 힘들다.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도 보경사의 심보경 대표를 통해서 소개받았는데 나중에 영화를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난 다음에야 <불신지옥>을 봤다. 물론 빨리 돌려 보면서. (웃음) 내가 보지 못하는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 건 당연한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유행인 일본 소설이나 여타 원작들의 영화화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인기 원작이 있었던 작품은 <마당을 나온 암탉> 정도다. 그런데 눈돌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우리 얘기를 하기에도 바빴다고나 할까.”

변화하는 산업환경, 그들의 미래

이제 한국영화계는 대기업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 해도 과언 이 아니다. 한때 고유명사처럼 이해되던 신철, 차승재, 유인택 등 관록있는 프로듀서들의 이름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른바 ‘여성 프로듀서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저력의 프로듀서들도 여전히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데 후배 프로듀서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산업구조의 합리성에 대한 책임감도 느낀다. ‘명필름의 17년’은 그런 시대를 소재와 장르를 오가며 명필름의 색깔이 묻어나는 영화들로 힘겹게 채우고 통과해온 고집과 뚝심에 대한 찬사다.

현재 명필름은 이은 대표의 주도하에 영화제작으로 출발한 사업모델을 보다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15년 이상 일하며 좋은 인력들과 새로운 영화산업구조를 꿈꿨고 같은 맥락에서 우리 수준에 맞는 멋진 모범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1, 2년 내에 가시적인 결과물로 보여줄 생각이다. 그렇게 명필름의 새로운 4기가 꿈틀대고 있다.

▶이은 “모든 것이 돈으로만 흘러가면서 인력이나 인간성의 측면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니까, 나는 오히려 틈새시장이 좀더 넓어지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규모를 꾸리기는 힘들어지고 있지만 뭔가 경제적 비용으로도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여지는 더 있다. 농담처럼 틈새가 있다고 했는데 그 근거를 찾자면 산업이 굉장히 시장화되다보니 대기업 직원들이 맡게 되는 담당 편수 자체가 굉장히 많아진다. 그에 반해 우리는 우리 작품만 보고 달려든다고나 할까. 제작이나 마케팅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다 섬세한 결정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 본다. 아무튼 신인 제작자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구조다. 결과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갈 때 자기의 확신을 지켜내는 게 중요하다. 계약서를 쓸 때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 도 좋은 모범과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심재명 “여러 블록버스터들의 실패 속에서 <써니>나 <완득이>, 그리고 <건축학개론>의 성공사례를 보면 자본이나 시스템의 파워만으로는 결코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역설적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감사한다. 명필름은 SNS가 살린 영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 <건축학개론>은 물론이고 <부러진 화살> 등 SNS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롯데와 하면서 대기업과 일개 제작사로 마주하며 작업한 게 거의 10여년 만이었다. 그러다보니 세월도 변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공동제공사라 대등하게 했고 <건축학개론>은 우리가 수공업적으로 밀도있게 만들었다면 그걸 롯데의 시스템으로 폭발력있게 해줬다. 대기업의 여러 마케팅 툴과 노하우는 분명 도움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제작사로서의 목표점에 대해서는 양보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가장 먼저 즐기는 사람은 바로 영화를 만든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판단이 틀리지 않는 한 지킬 것을 지키며 계속 쭉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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