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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한국영화 등급 자율적으로 안되겠니?

줏대 없는 영등위보다 민간 심의가 필요한 이유

등급심의가 완화되고 있다. 영화가 아니고 게임과 웹툰이 그렇다는 얘기다. 최근 게임물등급위원회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휴대폰 오픈마켓 게임을 비롯한 일부 게임물에 대한 심의를 민간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자율 심의기구의 지정요건을 명시한 것으로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하도록 준비를 마쳤다. 올해 초 청소년 유해물 지정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웹툰도 규제와 심의를 자율적으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양해협약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체결해 체계 마련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그동안 정부와 정부산하기구에 의한 규제, 심의로 발생했던 논쟁과 시비에 대해 뒤늦게나마 업계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영화 또한 ‘자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윤리위원회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 ‘등급심의’가 ‘등급분류’로 그 역할과 개념이 명징하게 변화했는데도, 등급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게 영화의 현실이다. 오히려 영화가 가장 먼저 ‘자율’을 쟁취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왠지 선수를 뺏긴 느낌마저 든다.

할리우드의 등급제도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등급판정 기준은 ‘줏대’가 없다. 민간단체인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 MPAA)가 담당하는 할리우드의 등급분류는 등급에 따른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기준이 우리보다 명확하고 보수적인 편이다. 예를 들어 <다이하드4.0>은 개봉 당시 등급이었던 PG-13 버전과 이후 ‘무등급’으로 출시된 DVD 버전을 비교할 때 피의 양과 폭력의 강도까지 차이가 있다. 기준이 명확한 한편, 주제와 소재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미국이 영화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영화협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등위는 어떤가. 정부 산하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영등위의 등급분류에는 문화적인 관점이 없어 보인다.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목적보다는 청소년 보호가 먼저다. 보건복지와 교육 영역에서 영화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해 등급을 분류하니 말이다. 영화에 따라 비슷한 내용과 장면에서도 판정이 들쭉날쭉할뿐더러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색깔이 짙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려버린다. 때로는 유해성 여부와도 상관없어 보이는 판정이 나올 때도 있다. 지난 2009년 2월 개봉한 <작전>은 증권거래조작이 소재인데 청소년 관람불가가 나왔다. 그런데 내가 만들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시킨 <마린보이>는 마약 밀매를 다루었는데도 15세 관람가가 나왔다. 이러한 헛발질을 보고 있으면 영등위의 존재 이유에 심각한 회의감이 드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제는 영화도 ‘자율’을 부여받을 때가 됐다. 할리우드처럼, 게임과 웹툰처럼, 영화 등급도 이제는 민간에서 심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더 자극적이고 더 폭력적인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걱정은 마시라. 반드시 지켜야 할 공정하고 명확한 기준만 주어진다면 그 안에서 펼쳐낼 창의성과 예술성의 경지는 훨씬 무궁무진할 것이다.

<도가니>는 개봉 이후 영등위에 두번의 재심의를 신청했다. 지난해 10월 초에 신청한 첫 번째 심사 결과 다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이 나왔다. 영등위는 “주제, 내용, 대사, 영상표현에 있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성폭행 등의 묘사가 구체적이며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도가니>의 제작사인 삼거리픽쳐스는 약 한달 뒤, 두 번째 심사를 신청한다. 이번에는 약 11개 부분의 장면이 삭제되거나 수정됐다. 행정실장이 아이의 팔을 테이프로 묶는 장면, 교장실 탁자에서 아이가 추행당하는 장면, CCTV에 담긴 성폭행 장면이 삭제됐다. 하지만 심사 결과는 마찬가지. 영등위가 밝힌 이유의 골자 또한 ‘청소년 보호’였다. <도가니>의 사례는 영등위가 표현 수위뿐만 아니라 영화의 소재까지 제한하고 있다는 의심을 낳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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