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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감정을 인터뷰하는 것도 예술일 수 있구나”

<미래는 고양이처럼> 미란다 줄라이 감독

연출과 연기를 겸하는 드문 여성감독 미란다 줄라이가 7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달라졌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2006)에서 아마추어 아티스트로 등장했던 그녀는 설익은 권태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것이 곧 예술이고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반면 <미래는 고양이처럼> 속 그녀는 권태에서 도망치려다 무참히 끝나버린 사랑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목도한다. 낙천적으로 사랑을 희망했던 그녀가 사랑의 유한함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사정이 묻고 싶어졌다. 이에 그녀가 이런저런 사건들을 쌓아올려 이 영화를 완성한 과정을 전해왔다.

-<미래는 고양이처럼>을 보고 매우 슬픈 영화라고 느꼈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만든 뒤 지금껏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 =첫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편집할 때 당시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끝나가고 있어서 아주 우울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완성된 영화는 밝고 희망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내가 느꼈던 어두운 감정과 이별의 느낌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영화를 끝내고 나니 내가 늘 해왔던 다른 작업들이 하고 싶어졌다. 당시 작업 중이던 단편소설집 <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도 마무리하고 싶었고. 소설집을 내고 나서는 프로모션과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보인 조각 정원 제작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걸 감안하면 두 번째 영화는 무척 일찍 만든 셈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작업하는 방식이 워낙 특이해서 그런 것 같다. 여러 매체를 오가면서 작업을 하니까.

-제이슨이 이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시간을 영원히 멈추고 싶어 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동시에 무섭게 느껴진다. 이런 직접적인 표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갑작스런 이별을 겪는 와중에 밝고 희망적인 영화를 편집하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느낌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야겠어. 이 어둡고 폭력적인 느낌을 잘 표현해낸다면 아주 만족스런 작업이 될 거야.’ 그래서 애초에 이 영화의 시초가 된 행위예술 작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얘기하려 하지 않는 것들>을 작업할 때 소피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제이슨이 그 순간 시간을 멈춰버리는 장면을 써놨었다. 단지 행위예술에서와 달리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짜로 시간이 멈춘 상태를 이미지와 행위로 보여줬다는 게 다른 점이랄까.

-고양이를 고양이 인형의 발과 당신의 목소리만으로 형상화한 방식이 독특하다. 그 고양이를 통해 영화에 어떤 정서를 불어넣고 싶었나. =<우리가…>를 작업할 당시 길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는 것을 목격했다. 그 광경이 하고 있던 작업의 일부처럼, 아주 비극적이고 슬픈 조각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 고양이를 직접 묻어주었는데, 그러면서 그 고양이의 이야기는 끝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양이를 애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서 출발해 거꾸로 영화를 구상해나갔다. 고양이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인간 캐릭터에게 부여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진솔한 감정들을 대변하기에 적격이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모습은 최대한 적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 편이 인위적인 설정을 더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말하는 입모양을 상상해보라. 그런 건 절대 영화에 넣고 싶지 않았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고양이에 대한 완전한 이미지를 제공하기보다 관객이 머릿속에서 스스로 그림을 완성해나가길 바랐다. 고양이가 관객의 마음속에 존재하게 하고 싶었다.

-당신의 영화 속 사물에는 종종 눈이나 팔, 다리가 달려 있다. 이번에도 티셔츠 ‘셔티’가 등장한다. 이 역시 당신의 다른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가. =오래전부터 즐겨 썼던 방법이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만든 비디오 작품을 다시 봤더니 수건과 인터뷰하는 장면도 나오고, 심지어는 불안감이나 자신감 같은 감정들과 인터뷰하는 장면도 나오더라. 그게 내가 예술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 시초였던 것 같다. 수건이나 감정을 인터뷰하는 것도 예술일 수 있구나, 뭐 그런 생각. 특히 내가 영화나 소설에서 사물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사물들의 난해하거나 신비한 점에 가닿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그 사물들이 난해하거나 신비하게만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사물은 매우 친숙하고 흥미로운 상대가 될 수도 있다. 사물도 떨어뜨리면 목소리를 내지 않나! 그러니까 내가 사물에는 없을 것처럼 종종 치부되는 감정이나 정서를 되돌려줄 수 있다면 그 사물도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영화나 책에서라도.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내 영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미래는 고양이처럼>에서는 그런 생각을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냈던 것 같다.

-소피를 맡은 당신과 제이슨을 맡은 해미시 링클레이터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의도를 갖고 그를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해미시 링클레이터는 내 캐스팅 디렉터가 1순위로 추천한 배우여서 전혀 망설이지 않고 캐스팅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미시가 처음에는 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뒷머리가 훨씬 더 길었다. 그래서 소피와 제이슨을 닮아 보이게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둘이 딱 봐도 연인처럼 보이게 하면 좋을 것 같더라. 영화는 시각적 매체고 소피와 제이슨이 외모마저 비슷하면 소피가 바람 피우는 상대인 마샬이 소피에게 잘못된 상대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쉽게 대비시킬 수 있었다. 내가 마샬 역을 맡을 배우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마초처럼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명쾌한 시각적 계산은 언제나 유용하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섹스 신을 아주 대범하면서도 건조하게 연출했다. 연출할 때 특히 어떤 점에 신경을 썼나. =마샬과의 섹스 신에 대해 내 전 남자친구가 시나리오 초고를 읽고 이런 말을 해줬었다. ‘여자감독이 자신이 연출할 영화의 섹스장면을 직접 쓰고, 심지어 연기까지 직접 한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야. 내가 너를 아니까 하는 말인데, 너는 이것보다 좀더 과감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나는 내가 은연중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소설이나 다른 매체에서는 아주 과감하게 섹스를 묘사했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내가 직접 연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수위를 낮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좀더 나답게, 그러나 다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섹스를 묘사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번에도 소통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소통에 대한 불신을 다루고 있다. =소통과 소외에 대한 불안은 외로움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뿐만 아니라 우리가 소통을 복잡하게 만드는 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 자체가 이미 일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들도 소통을 열심히 시도하는 동시에 소통에 매우 소극적일 때가 많다.

-소피가 자신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다 실패하는 설정은 어떤 의미에서 끌어들였나. =남들의 시선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유튜브와 같은 매체는 그런 다분히 인간적인 욕망을 손쉽게 만족시킬 수 있는 현대적인 도구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제목을 <만족>(Satisfaction)에서 <미래>(원제는 <The Future>다.-편집자)로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만족>이라는 제목도 맘에 들긴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혀 다른 영화의 제목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1980년대 영화 중에 걸 밴드를 다룬 동명의 영화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 의미가 모호하고 열려 있는 제목을 찾으려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제목을 바꿨다. 제목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좋은 제목이 많은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검색해봤더니 ‘과거’(the past), ‘현재’(the present), ‘미래’(the future)가 나왔다. 그중 ‘미래’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영화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차기작은 영화가 아니라고 들었다. =얼마 전에 <사물이 당신을 선택한다>(It Chooses You)라는 논픽션 책을 출간했다. <미래는 고양이처럼>과도 관계가 깊은 책이다(미란다 줄라이가 <페니세이버>(Pennysaver)라는 광고지를 통해 자신이 쓰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영화에서 제이슨에게 헤어드라이어를 팔고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해주는 ‘조’ 할아버지 역과 달 목소리를 연기한 조 퍼털릭을 캐스팅하게 된 것도 이 작업을 통해서였다.-편집자) 실제 나를 1인칭 주어 ‘나’로 등장시켜 쓰는 작업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제까지 내가 썼던 캐릭터들은 모두 실제 나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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