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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누가 한국을 근대라 했는가

“볼에 화장을 하고 남색질을 뽐내고 다니는 소년들에게 ‘몸에 꼭 달라붙은 짧은 상의’를 입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옷은 조그만 천으로 앞뒤로 배꼽과 허리까지만 덮었기 때문에 생살을 거의 다 남색자들에게 드러낼 정도다. 그들은 천조각은 아끼고 살은 소모하고 있구나!”

이 연설의 주인공은 15세기 피렌체의 연설가 베르나르디노. 동성애의 악취로 피렌체가 고통받고 있다는 주장으로 거대한 군중을 이끌고 다니면서 시의회의 후원 아래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전설적 인물이었다. 그의 설교 덕에 적지 않은 동성애자들이 부대에 담긴 채 바다에 던져져 익사했다.

하지만 베르나르디노는 600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그의 후예들이 청소년들을 향해 살을 소모하지 말라고 협박하리라 예상했을까? 당시 교회와 시 당국이 밤이 되면 동성애 타락의 위험이 있다며 학교 수업을 일몰 전에 끝내는 법을 제정했던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학생들에게 순결 사탕을 나눠주고 ‘학생인권조례’를 동성애조장법이라고 비난하리라는 것을 과연 예상했을까.

600년이 흘렀지만, 여기 한국은 그렇게 서구 중세의 흑역사에 빙의된 도착자들이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중세 교회가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인구 감소의 원인을 동성애자나 유대인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돌려 불만을 잠재우는 ‘희생양의 정치’를 폈던 반면, 여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비롯한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주)예수 그리스도의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꺼이 동성애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겠단 영업적 각오를 불사르고 있다는 점이다.

광기도 지나치면 코미디가 된다. 얼마 전의 레이디 가가 소동이야말로 한국 보수 기독교의 엽기성이 폭로된 희대의 코미디였다. 레이디 가가의 짧은 옷과 속살 속에 동성애의 악취와 악마의 형상이 숨어 있다고 공연장 바깥에서 울부짖는 모습은 전세계 언론에 타전되었고, 국제적 비웃음으로 국격을 드높였다. 동성애에 대한 이들의 광기어린 혐오는 반동성애 깃발을 나부끼며 새로운 십자군전쟁에 나서려는 미국의 복음주의 행태를 그대로 따라하는 바, 위기에 봉착한 기독교가 선택한 마지막 영업 품목이 바로 ‘동성애’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선악으로 나뉘어진 아마겟돈 형태로 이해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는 교리 자체의 내적인 부실함을 항상 외부의 적대를 가정함으로써 극복해왔고, 반동성애야말로 21세기의 식성 좋은 신자들에게 던져줄 마지막 먹잇감이자 포화된 선교 시장을 극복할 마지막 상품인 것이다. 전국의 슈퍼마켓보다 9배나 더 많다는 한국의 7만~8만개의 교회들이 점점 증폭시키는 반동성애의 함성이 어찌나 위력이 센지 최근 오바마의 동성결혼 찬성 발언으로 그들의 숭미 정신이 좀 밍밍해지는가 싶더니, 그 화를 일제히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쏟아냈고, 애초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할 것 같았던 박 시장을 끝내 뒤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누가 한국을 근대라고 했는가. 서구 중세로부터 불려나온 저 베르나르디노의 유령들이 이렇게 도처를 배회하고 있다. 코미디와 광기가 교차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중세의 계절이 끝나지 않으면 근대성도, 민주주의도 그저 요원할 뿐이다. 배회하는 망령들을 관 속에서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건 눈 말갛게 뜬 이성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