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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굶는다

<타이타닉> 케이트 윈슬럿의 코르셋

사람들은 <타이타닉> 속 명장면 ‘갑판 위에서 양팔 벌리고 있기’를 흉내내기 위하여 첫째로는 타이타닉만큼 근사한 대형 여객선이, 둘째로는 뒤에서 조용히 허리를 잡아 수 있는 잘생기고 사려깊은 연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그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코르셋이 아닐까 싶다. 그 장면이 로즈(케이트 윈슬럿)가 처음으로 모든 정신적 족쇄를 잊고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어서 몇배는 더 감동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코르셋이 배와 허리의 군살을 완벽하게 눌러주지 않았다면 로즈는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자신의 허리와 배를 ‘집중적으로’ 잡는 순간에 약간의 주저함이나 쑥스러운 기색없이 양팔을 벌린 채 대서양의 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 우습고도 슬픈 얘기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녀를 억압하는 상징으로 등장한 코르셋일망정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데 심심찮은 도움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인간과 인간사는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연속이라서 자유와 억압은 쉽게 입장이 뒤바뀌는가 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전혀 뜻밖의 사건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수많은 유럽 여성들이 인권을 근거로 무자비한 코르셋 착용을 반대했지만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여성들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것은 패션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엠파이어 라인의 드레스였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엠파이어 라인은 실제 허리선보다 높은 곳에, 가슴 바로 아래에 허리선이 만들어지는 실루엣으로, 이 실루엣의 유행 덕분에 가슴을 무자비하게 조이는 코르셋은 하루아침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고, 드레스 안의 허리가 얼마나 잘록한지도 무의미해졌다.

1년 365일 다이어트로 고심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해보자면 어차피 좋은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현시점에 가장 필요한 디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얼마나 말랐는가와는 관계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디자인이다. 누군가 그런 디자인을 만들어 유행시킬 수 있다면 모델처럼 마른 몸을 만들려고 신음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다이어터를 구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에스자형 대신 직선형 실루엣이 유행하면서 여성들은 이번엔 남들보다 더 가느다랗고 예쁜 직선을 만들어내려고 엉덩이를 조이고 끌어올리려 노력했을 테고, 보폭이 좁아지는 것을 감수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아름다움은 어쩔 수 없이 까다로워야 하는 모양이다. 미의 본질은 예뻐 보이거나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남들이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을 타고났거나, 남들이 견디지 못한 것을 견딘 결과물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운명’ 혹은 ‘인내’를 흠모하고 떠받드는 것이다(아, 그래서 모든 맛있는 음식들은 잔인하게도 하나같이 살찌는 것들로만 구성되었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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