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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청바지는 어쩌다가 까다로운 옷이 됐을까

< S러버 > 애시튼 커처의 청바지

니키(애시튼 커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수’다. 잘생긴 얼굴에 스타일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여자를 유혹하는 법을 꿰뚫고 있어서 노소를 불문한 여자들이 그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그런 그도 끝내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으니 정작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여자를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청바지를 멋있게 입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니 청바지 잘 입는 대단한 비법이라도 소개할 것 같지만, 수많은 청바지를 입어보고 절망하며 깨달은 건 가장 만만히 입을 수 있는 옷인 청바지가 실은 가장 까다롭고 복잡한 옷이라는 것이다.

니키가 영화 내내 입고 나오는 진(Jeans)은 웨이스트라인이 짧아서 멜빵을 풀면 바지가 엉덩이 한가운데에 걸쳐지고, 바짓단은 복사뼈가 살짝 드러나게 접어놓은 스타일이다. 보통 남자들이 흔히 입는 모델도 아니고 웬만큼 키가 크고 다리가 길지 않고서는 소화할 수 없는 디자인이라서 그의 스타일을 여러모로 ‘한수 위’인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는 멋지지 않다. 또 다른 청바지 애용자 제임스 딘과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랜도, 그리고 브루스 스프링스틴만큼은.

사람들은 청바지를 멋지게 입으려면 가늘고 긴 다리와 예쁜 엉덩이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랜도,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그런 면에서 애시튼 커처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제임스 딘은 키가 크지 않았고,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경우엔 할아버지가 된 지금도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 여전히 멋진 것을 보면, 청바지를 잘 입는 건 몸매나 나이, 심지어 시대와도 무관한 것 같다. 노동자나 카우보이의 작업복을 일반인이 입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저항 혹은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 때문에 청바지는 다른 옷들이 흉내낼 수 없는 매력을 품게 됐다. 앞서 말한 세 남자가 평범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스트레이트 진 한벌로도 더할 나위 없이 멋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러한 매력을 자연스럽게 풍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너무 이상적인 얘기인진 몰라도 요컨대 청바지로 멋을 내는 데 필요한 건 좋은 몸매나 체형에 어울리는 모델을 찾아내는 안목이라기보다는 자유로움과 강인함을 뿜어내는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러한 매력을 갖기가 어렵기에 청바지의 세계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게 아닐까.

아, 나도 언젠가 한번쯤 지금 가진 앙증맞고 날렵한 청바지들을 물리치고 델마와 루이스처럼 웨이스트라인이 윗배까지 길게 올라오는 투박한 청바지를 구해 입고 그녀들처럼 폭발할 듯한 자유로움과 생기를 발산해보고 싶다. 우선 권총을 한 자루 구하고, 66년형 선더버드를 타고…. 그랜드캐니언에 가면 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쉽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