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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영업”의 진수 <아부의 왕>
김성훈 2012-06-20

침묵은 금이라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행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적당한 맞장구나 마음에도 없는 ‘샤바샤바’가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온몸이 그걸 거부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매 순간 두드러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아부의 왕>의 동식(송새벽)은 아부를 못하거나 아부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부의 개념이 뭔지 모르는 눈치없는 직장인일 뿐이다(그 말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포텐’만 터지면 그는 아부계의 기린아가 될 수 있다!). 홈쇼핑 사업권을 따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오로지 최선을 다하라”는 ‘갑’의 형식적인 한마디를 듣고 산행에서 갑을 가볍게 앞지르질 않나, 분위기가 좋지 않은 팀회의가 끝나자마자 “먼저 들어가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서질 않나. 혀 하나로 살아남아야 하는 영업팀에 동식이 버려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동식은 엄마가 끌어다 쓴 사채도 갚아야 한다. “소신만 있는” 만년 교감 선생인 아버지를 위해 동식의 엄마가 사채를 빌려 교육청에 뇌물을 돌린 것이다.

코미디영화로서 <아부의 왕>은 딱 동식이 “남북정상회담의 주역” 혀고수(성동일)를 찾아가 아부 수련을 받는 영화의 초반부까지만 재미있다. “침묵을 기본”으로 “눈을 3초간 맞춘 뒤 4초간 미소를 보낸다. 그러나 5초 이상이면 위험하다”는 ‘3, 4, 5의 법칙’,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지어야 하는 은은한 미소, “암요. 그럼요. 당연하죠. 별말씀을” 콤보로 이어지는 맞장구의 법칙 등 혀고수가 동식에게 아부, 아니 “감성 영업”을 가르치는 풍경은 무협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연기를 하는 송새벽과 성동일 두 배우의 호흡은 절묘하고, 제법 잘 어울린다.

그러나 <댄싱퀸> <차형사> 등 코미디에 로맨스와 감동을 모두 집어넣으려는 최근 한국 코미디 장르의 어떤 경향을 <아부의 왕>도 그대로 따른다. 대학 시절 연인인 선희(한채아)가 갑자기 악당 이 회장(이병준)의 아내로 등장하는 장면은 억지스럽다. 사채업자 성철(고창석) 일당은 극중 코미디와 결정적인(?) 장면을 위한 장치인 건 잘 알겠으나 너무 유치하다. 별명이 불도저고, “찍지 마, 성질 뻗쳐서”라는 대사를 하는 이 회장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려는 의도 역시 잘 알겠으나 풍자의 쾌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순진하다. 그나마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예지력의 소유자이자 아부계의 또 한명의 고수인 예지(김성령)다. 동식과 혀고수 두 남자가 예지와 함께 이 회장 앞에서 보여주는 아부의 퍼레이드는 그마나 참고 볼만하다. 차라리 <투캅스>처럼 송새벽과 성동일 두 남자의 이야기를 좀더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부의 왕>은 <밀양>의 조감독 출신인 정승구 감독의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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