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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그리고 영화의 황금시대는 끝났다

<이상한 정열>(El) _ 루이스 브뉘엘, 1952년

<이상한 정열>

우디 앨런은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을 빌려 자신이 사랑하는 황금시대가 ‘1920년대의 파리’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다 영화의 황금시대는 언제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유럽영화쪽에 비중을 두는 사람은 1920, 30년대의 어느 지점을 꼽을 테고, 할리우드영화를 우위에 둔다면 1930, 40년대의 어느 해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딱히 어느 시기라고 주장하지 못하겠다. 부족한 내 눈에 1950년대 이전 작품은 모두 황금시대의 유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언제쯤 그 시대가 막을 내렸는지는 알 것 같다. 1950년대 중반 즈음이 아닐까 싶다. 한 예로, 1954년 칸영화제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길이 따라간 파티의 주인공인) 장 콕토가 심사위원장이었고 아벨 강스, 에드워드 G. 로빈슨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장편경쟁부문에서는 존 포드, 앨프리드 히치콕, 앙리 조르주 클루조, 자크 타티, 비토리오 데 시카,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루이스 브뉘엘, 알프 시에베리 등의 신작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껏 이보다 위대한 칸영화제의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곧 젊은 불한당패가 쏟아져 나와 선언과 운동을 외치며 앞선 영화를 비판할 태세였지만, 1954년의 칸은 폭풍 따위엔 무관심한 천국이었다.

<이상한 정열>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어수룩한 모습으로 서성이던) 브뉘엘이 그해 칸에 들고 온 영화는 <이상한 정열>이었다. 브뉘엘의 멕시코 유배 시절을 대표하는 걸작은 (<미드나잇 인 파리>가 농담으로 탄생의 비밀을 밝힌) <절멸의 천사>지만, 제각기 팬을 거느리고 있는 멕시코 시대 작품 가운데 <이상한 정열>의 위상 또한 높은 편이다. 브뉘엘은 자기 작품 중 좋아하는 한편으로 <이상한 정열>을 언급한 적이 있다. 브뉘엘은 그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편집증 환자를, 시인처럼 타고난 존재여서 치료하기 힘들다고 여겼다. 주인공 프란시스코는 지인의 약혼녀였던 여자와 결혼한다. 그는 아내의 과거와 순수성을 매 순간 의심하다가도 그녀의 발을 볼 때면 솟아오르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상한 정열>은 병든 자의 미친 사랑 이야기다. 병적 충동에 사로잡힌 고지식한 남자의 블랙코미디란 점에서 이후 작품들과 연결되며, 아르투로 데 코르도바의 얼굴에선 훗날 페르난도 레이가 지을 표정이 예감된다. 3년 뒤 브뉘엘은 <아르치발도 드 라 크루즈의 범죄인생>에서 유사한 인물과 피해망상의 주제를 다시 다루는데, 형제 같은 두 작품은 긴 간격을 두고 다른 두 영화에서 인용되기에 이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라이브 플래시>에서 <아치발도>의 보일러 장면을 사용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히치콕의 <현기증>이다. 그해 칸에 나란히 참석해 아마도 <이상한 정열>을 보았을 히치콕은 몇년 뒤 <현기증>의 종탑 장면에서 브뉘엘 영화를 카피하고 만다. 게다가 엉큼한 배불뚝이 아저씨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이상한 정열>의 남녀관계를 뒤트는 재기를 발휘한다. 브뉘엘의 심기가 불편했음은 빤한 일. 히치콕이 사과하고 브뉘엘이 미소로 답하기까지 몇년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리고 영화의 황금시대는 막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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