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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언어의 신이 내려와
안현진(LA 통신원) 2012-08-17

<뉴스룸>의 아론 소킨

아론 소킨

<웨스트 윙>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의 각본가 아론 소킨이 만드는 새 TV시리즈 <뉴스룸>은, 여러 사람을 뜨끔하게 하는 불편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놓고 뉴스 보도의 공정성을 설교하고, 달라지자고 성토를 하니 편향 보도가 당연시되고 뉴스의 오락성을 강조하는 방송사들 입장에서 뜨끔한 것은 물론이고, 매사에 뒷전에서 안온하게 지켜보고 한마디 보태는 것을 주저해온 시청자도 일침을 맞는 기분이 든다.

가상의 케이블채널 <ACN>의 뉴스프로그램 <뉴스나이트>의 앵커 윌 맥어보이(제프 대니얼스)는 시청률, 사주, 광고주 등 뉴스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요소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탓에 ‘개념’보다는 중립을 고수해온 그는 ‘뉴스계의 제이 레노’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도 달고 다닌다. 누군가가 정치적 성향을 물으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 투표한 적이 있다”고 에둘러 넘기는 그지만,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인 이유가 뭐냐”는 질문 앞에서는 냉소에 찬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고 만다. 그렇게 스스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윌 앞에, 헤어진 여자친구이자 종군기자였던 매켄지 맥헤일(에밀리 모티머)이 새 프로듀서라고 나타난다. “뉴스는 검증된 사실에 기반해야 하며, 시청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그녀는 제 목소리와 시각을 가진 <뉴스나이트2.0>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윌은 매켄지와의 과거 때문에 그녀가 못마땅하지만, 결국 그 손을 잡는다.

뉴스는 논픽션이되 캐릭터는 픽션을 지향하는 <뉴스룸>은, 전형적인 아론 소킨 스타일의 드라마다. 드라마 <웨스트 윙> <스튜디오 60>, 영화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보여준 소킨식 속사포 대사는 <뉴스룸>에서 ‘미디어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캐릭터들의 세치 혀를 통해 다시 한번 브라운관을 혈흔 없는 전장으로 만들었다.

특히 <뉴스룸>의 파일럿은 훌륭했다. 첫 에피소드에서 <뉴스나이트> 팀은 심해 기름유출사고를 긴급속보로 다루는데, 한발 늦게 보도 대열에 합류한 타 방송사와 다르게 문제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낸다. 진실을 추적하고 방송하기까지의 일분 일초가 어찌나 긴장감 가득한지 보는 내내 심장이 쿵쿵 뛰고 엔딩에서는 소름까지 돋았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낭만적이었다. 윌 맥어보이는 뉴스답지 못한 뉴스를 만들었음을 사죄하는 것으로 <뉴스나이트>를 시작했다. 한데, 그 뒤 <뉴스룸>은 ‘비현실적인 판타지’라며 돌팔매를 맞았다. 소킨이 뉴스의 공정성을 말하면서, 자기 반영적인 내용과 개인의 이상, 정치적 소견을 제시한다는 비난도 거셌다.

확실히 <뉴스룸>을 좋아하려면 소킨을 좋아해야 한다는 의견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소킨의 팬이 아닐지라도 <뉴스룸>은 2012년을 사는 우리에게 맥락적으로 흥미롭다. 한국의 방송사 파업사태는 물론이고, 편향보도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 미국의 뉴스 문맹률이 이 맥락에 해당한다. 더불어 <뉴스룸>을 만드는 소킨과 <뉴스나이트>를 만드는 <뉴스룸> 속 캐릭터들이 처한 현실이 닮았다는 점도 재미있다.

며칠 전 아론 소킨은 <뉴스룸> 작가실에서 1명을 제외한 모두를 해고했다. <HBO>는 연례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발표했지만, 소킨이 공공연하게 <뉴스룸>의 모든 각본은 혼자 쓴다고 말해온 만큼, 이번 해고 사태는 소킨과 방송사 사이의 통제력을 둔 다툼이 원인일 거라는 추측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주도권을 누가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HBO>는 <뉴스룸>의 시즌2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상적인 뉴스를 찾아 떠나는 돈키호테들을 만날 시즌이 하나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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