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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소녀의 죽음 <이웃사람>
송경원 2012-08-22

부쩍 흉흉한 사건이 많은 요즘이다. 웬만한 영화보다 끔찍한 일들이 바로 옆에서 연일 터지는 걸 볼 때면 이웃간의 정이 어쩌고 하던 말이 골동품처럼 들린다. 우리는 도시라는 이름의 섬에서 매일 타인이라는 공포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이웃사람>이 오늘날 유효하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동명의 강풀 원작 웹툰을 영화화한 이 이야기는 공간의 단절이 가져오는 어둡고 습한 공포와 그럼에도 끝내 인간을 믿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함께 담아낸다.

202호 소녀의 죽음과 열흘 간격으로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으로 강산맨션의 주민들은 불안에 시달린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 겨우 얼굴만 알고 지내던 주민들이지만 사건 발생일마다 시켜먹는 피자, 이상할 정도로 많이 나오는 수도세, 시체가 담긴 가방과 똑같은 가방 등등 각자의 이유로 차츰 한명씩 102호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102호에 살고 있는 살인범 승혁(김성균) 또한 그 낌새를 눈치채고 최후의 사건을 저지르고 도망치려 하고, 또 다른 소녀의 희생을 막기 위한 주민들과의 마지막 대결로 치달아간다.

강풀 원작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너무나 매력적인 소재, 영화에 어울리는 이야기지만 함정은 거기에 있다. 그의 작품들은 감탄할 만큼 ‘영화적’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자극적이되 불편하지 않은 대중적인 화법, 선명한 캐릭터와 익숙한 리듬감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와 ‘영화적’인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번에는 꼭 흥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강풀의 농담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강풀 만화는 너무나도 ‘영화적’인 효과를 잘 구현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각색이 성공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놓여 있고 그것은 <이웃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크게 볼 때 각색이란 딱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원작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내어놓거나, 혹은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거나. <이웃사람>은 마음먹고 두 번째 길을 선택한다. 영화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이미 만화가 다 갖추고 있으니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효과적으로 압축해낼 자신만 있다면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성공의 관건은 방대한 분량의 원작에서 각각의 사연과 드라마를 엮어나가던 캐릭터들을 어떻게 장면으로 전환시키고 하나의 결 위로 묶어나가는가에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장르적으로 하나의 톤 위에 놓일 수 없는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스릴러의 긴장감이 지배적이지만 간혹 불쑥불쑥 호러와 멜로드라마가 위로 포개어진다. 어떤 소재를 가져오건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드라마를 뼈대로 삼는 강풀 원작 특유의 색깔이라 해도 무방하다. 죽은 소녀의 새엄마 경희(김윤진), 악질 사채업자 혁모(마동석), 야간 경비원 종록(천호진) 등 모두 그 과정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 나보다 연약한 존재에 대한 보호를 통해 억압된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인물들인데, 문제는 캐릭터들의 각기 다른 사연과 감정의 결이 중반까지 서로 잘 붙지 않고 다소의 온도차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적절히 통제되지 못한 결이 다른 이야기들은 초·중반 어떤 감정으로 이 이야기를 대해야 할지 당황스럽게 한다.

다행히도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이야기 자체의 힘이 살아나 엇박자의 리듬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 게다가 워낙에 쉽고 매력적인 설정과 인물의 드라마 덕분에 다소간의 자잘한 단점들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은 바 크다.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에 더해 기존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캐스팅의 승리다. 여러 가지로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모자람이 있지만(오프닝과 엔딩의 생략과 변형은 특히 아쉽다) 반대로 기대와 부담이 너무 컸던 탓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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