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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누구를 위한 학과인가?

영화인력 과잉양산 방치한다면 이것도 일종의 ‘미필적 고의’일 수도

<티끌모아 로맨스> 현장.

지난해 한 학기 동안 서울 소재 모 대학 영화과에서 ‘제작실기’라는 과목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간 내가 영화일을 하면서 느꼈던 제작실무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얻게 된 개선방안, 그리고 변화하는 제작환경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을 학생들과 함께 연구했다. 강의를 하면서 영화과 학생들과 술자리도 몇번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학생들에게서 열패감(?)을 느꼈다. 영화과를 졸업해도 실제 영화현장에서 일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과 자신들이 평생 업으로 삼으려 하는 영화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대부분의 학생이 갖고 있었다. 영화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상업영화 제작사가 무조건 그들을 채용하거나 수련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이는 일자리는 한정된 반면, 시장으로 배출되는 영화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너무 많은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올겨울이 되면 전국 수십여 대학의 영화학과를 비롯해 사설 영화학교, 학원들은 또다시 부지기수로 영화 관련 학생들을 배출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나온 많은 예비 영화인들은 산업 내로 유입되지 못하고 영화 주변에 머물거나 혹은 영화산업과는 무관한 업종으로 나가게 된다. 특히 감독을 지망하는 학생이나 프로듀서 지망생들은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운 혹독한 현실을 맛봐야 한다. 반드시 영화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만 감독, 프로듀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영화를 전공한 학생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무한경쟁을 치러야 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원칙이 무한경쟁이지만 산업 내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아니 소화할 수도 없는 학생들을 이 상태로 계속 배출해낸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과가 물론 의대나 법대처럼 정원을 규제하거나 조절할 수 없다고 해도, 지금처럼 영화과 학생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것은 꿈을 실현하려는 젊은 친구들의 실현 불가능한 미래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상업영화(순제작비 30억원 기준)가 1년에 60편 내외로 제작되고, 편당 60여명의 영화인력이 투입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3천명만 있어도 영화산업은 돌아간다. 독립영화 혹은 단편영화에 참여하는 인력까지 감안해도 산업이 소화할 수 있는 영화인력은 1만명 내외다. 이 산업 안에서 ‘신인감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1년에 10명 정도다. 예비영화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하는 이 현실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 것인가. 안타깝다고 말하고 눈감을 것인가. 엄밀히 말해서 현재의 영화 관련 학과가 영화를 하려는, 영화를 배우려는 학생들을 위한 학과인가. 아니면 그 영화 관련 학과에 종사하는 교수, 강사, 그리고 학교 자체를 위한 학과인가. 참으로 모호하다.

영화는 다른 일과는 달리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산업이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산업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인원들이 지금처럼 양산된다면 우리는 예비영화인들에게 불가능한 꿈을 심어주는 미필적 고의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산업 종사자 수는 얼마나 될까. 올해 5월 영진위가 발표한 ‘한국영화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을 기준으로 3만561명이다. 전년에 비해 2520명이 증가했다. 얼핏 보면, 3천명만 있으면 1년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말이 지나친 과장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 종사자 수에는 홈비디오(DVD/VHS) 제작, 도매 등과 같은 2차시장 종사자, 그리고 영화산업 종사자의 50%가 넘는 극장 상영 종사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 관련 학과 졸업자들이 대부분 원하는 제작 관련 분야의 종사자 수는 2010년 기준으로 2810명에 불과하다. 2006년, 2008년에는 제작 관련 종사자 수가 2천명을 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