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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죽음과 신화 그리고 언어의 공허함까지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2-09-04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서 <원시림> 상영한 YTN 뉴스 앵커 출신 이현정 감독

압구정 주택가의 한 작은 골목에서 헤매고 있었다. 마침 길을 걸어가던 한 여자를 발견하고, 자동차 창문을 열어 길을 물었다. 재미있게도 그녀 역시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알고보니 인터뷰 상대, 그러니까 제6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상영작 <원시림>을 만든 이현정 감독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뒷좌석에 태우고 인터뷰 장소로 함께 찾아갔다. 이 일화는 우연적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어떤 규칙의 일부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외할머니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남겨진 자의 태도 그리고 죽음을 통해 거대한 신화를 유추하는 <원시림>이라는 작품 역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우주적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외할머니의 죽음을 영화로 만들려고 한 이유는 뭔가.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장례식 과정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어떤 점이 달랐나. =어릴 적 이웃의 장례식에 가면 꽃상여가 있었다. 방역차 쫓아다니는 것처럼 애들이 꽃상여를 따라 온 동네를 즐겁게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축제까진 아니더라도 장례식이 하나의 동네 행사였다. 꽃상여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고. 그런데 외할머니 장례식은 너무 빨리 진행되고, 포클레인도 동원되고, 흙무덤 위의 풀이 잘 자라게 하려고 인부들이 무덤 위의 흙을 몽둥이로 때리고. 실용성 위주로 진행되던 장례식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과정이었지만 내게는 그게 비현실적이었던 거다. 그 아이러니가 충격적이었던 까닭에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었다.

-영화는 죽은 외할머니의 집을 찾아가는 감독과 그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보여준다. 극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 있는 이 시퀀스는 외할머니의 장례식과 호주의 울룰루에서 찍은 퍼포먼스와 함께 이야기 전체를 구성한다.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건 좀더 신화적인 것이다. 장례식 때 애 낳는 퍼포먼스를 하는 지역도 있는데, 그것은 죽음이 곧 또 다른 새로운 삶을 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죽음과 신화 그리고 여성 모두 관련이 있는 거고. 죽은 외할머니 집에 찾아갔지만 소통이 어려운 두 남녀를 통해 언어의 공허함도 함께 다루고 싶었다. 어쩌면 죽음은 신화처럼 시간과 공간이 모두 멈추는 어떤 단계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죽음을 이야기의 모티브로 가져가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자 역을 이상우 감독이 연기했다. 남자친구 같더라. =어떤 관객은 싸가지 없는 동생 아니냐 그러고. (웃음) 워낙 친해서 출연을 부탁했다. (영화를 본 이상우 감독의 반응을 묻자) 이상한 영화라고. 이게 뭐냐고. 자기 연기 덕분에 그나마 영화가 살아 있는 줄 알라고 하더라. (웃음)

-영화의 후반부, 여자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바위산에 올라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어떤 퍼포먼스를 한다. =호주의 울룰루라는 곳으로, ‘지구의 배꼽’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지명은 에어즈록인데, 울룰루는 원주민들이 지은 지명이라고 한다. 엄청난 ‘지구적인’ 에너지가 있는 곳이라 아직도 원주민들이 그 바위 근처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성지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죽음을 가까운 위치에서 봤다면 하늘 위로 올라가 죽음을 먼 곳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죽음의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이고, 순수한 풍경을.

-그 장면은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에 찍은 영상인가. =아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거다. 근원적인 무언가와 관련한 작품을 찍으려고 간 거였다. 그 장면에서 머리카락이 길잖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머리를 짧게 자른 거다.

-이력이 독특하다. YTN 뉴스 앵커 출신이다. =뉴스 앵커 시절 때는 치열하게 사는 게 체질이었던 것 같다. ‘모 아니면 도’ 같은 광적인 게 있었다. 종군 기자가 되는 게 마음속의 희망이었고. 뉴스 앵커만 한 게 아니었다. 문화부 같은 다른 부서에 가기도 했다. 그때 영상과 음악을 넣어 어떤 캠페인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PD 출신이었던 당시 부장님이 “앵커라고 해서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면 어떡하냐”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멘토였던 것 같다. 제대로 한번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미국에 건너가 잠깐 영화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때 실험영화들을 접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원래 코언 형제와 빔 벤더스 감독을 좋아했는데, 그때 본 실험영화들이 그들의 영화보다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 관심사는 무엇인가. =<원시림> 같은 사적인 에세이는 아닐 것 같다. 분명한 건 ‘여성성에 대한 한국적인 상징’이라는 주제를 계속 탐구할 계획이라는 것. 물론 재미있고, 선명하게 다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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