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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동심과 예술이 만났을 때

< Drawings 1998-2012_박미나 >

< Can You Draw >, 2011, dry rub transfer image on coloring page, 33x25.5cm

기간: 9월27일까지 장소: 두산갤러리 문의: www.doosangallery.com

당신은 색칠공부를 기억하는가? 검은 테두리의 그럴듯한 밑그림 덕분에 백설공주도 개구리 왕자도 크레파스로 슥슥 칠하기만 하면 완성할 수 있었던 반쪽짜리 그림들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 받아쓰기로 글자를 배웠다면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배웠을 것이다. 어디 그림뿐일까. 색칠공부를 통해 나는 눈사람은 하얗게 칠해야 한다는 걸 배웠고, 기분 좋으면 환하게 웃는 표정이 따라와야 한다는 걸 반복 훈련했으며, 드레스는 분홍색으로 칠해줘야 한다는 문화 코드(code)도 은근슬쩍 알게 되었다. 그러고는 이제 문방구에서 파는 색칠공부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어른들은 모두 그림의 지시 없이도 표면적으로는 현실을 잘 견디고 또 이해하려 하니까. 그런데 작가 박미나의 색칠공부 드로잉을 보고 그 마음이 다시 생겨났다. 난 그림으로 뭘 배운 거지?

< Find the Star >, 2012, sticker on coloring page, 33x25.5cm

작가 박미나는 여전히 색칠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은 지구상의 몇 안되는 어른일 것이다. 그는 밑그림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어른이 되지 않고 15년 동안 색칠공부의 비어 있는 도안에 색과 형태를 ‘날마다 다른 그림들’로 채워넣는다. 전시장에 놓인 300여점의 드로잉을 바라보다 보면 눈동자가 빙빙 돌아갈 만큼 흥미로운 놀이터처럼 느낄지 모르겠다. 당신은 박미나가 색칠공부가 녹색을 칠하라고 명령하면 어떤 색을 칠하는지 살펴볼 수 있고(반대로 말하기), 글자와 그림 또 숫자와 기호들을 어떤 패턴으로 만들며 데리고 노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티커와 테이프 같은 문구용품을 색칠공부에 붙이며 벌이는 레디메이드(ready made)의 향연과 귀염 깜찍한 드로잉들이 회색 조의 어두운 그림들로 변하는 순간을 보노라면 이 드로잉들의 ‘내일’이 궁금해질 것이다. 색칠공부 드로잉은 화가 박미나에게 머리에서 팡 튀어오르는 순간의 아이디어를 재빨리 구현할 수 있는 단거리 질주이자 동시에 15년이나 지속해온 마라톤이다. 드로잉이 시작된 해는 1998년. 15년 동안 785점의 드로잉을 그린 작가는 사회가 틀지어놓은 어른 화가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집요하고 탄력있게 ‘그리기+배우기’의 이중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작가는 전시 초대 엽서에도 색색깔의 물방울 무늬 스티커 몇점을 붙여 보냈다. 이렇게 예쁜 엽서는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