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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베푸소서’ <피에타>
주성철 2012-09-12

<피에타>는 오프닝부터 극심한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킨다. 청계천 공구상가를 무대로 각종 기계가 돌아가고 각종 공구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한낮에도 전등 빛이 없다면 온통 어두컴컴할 것 같은 <피에타>의 청계천 거리는, 김기덕 감독의 이전작 <아리랑>(2011)의 산속 외딴집과 비교하자면 죽음의 공간처럼 다가온다.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이 된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그저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오가는 청계천의 새로운 풍경도 매일 사채 빚에 찌들어가는 이곳의 토착민들에게는 남 일처럼 느껴진다. 김기덕 감독이 말하길, 자신이 젊었을 적에 실제로 이곳에서 기계를 만지며 일한 기억이 <피에타>에 반영돼 있다고 한다. 자고로 사람들은 심란할 때 과거로 빠져드는 법이다(<아리랑>을 둘러싼 세간의 논란을 떠올려보라). 어쩌면 <피에타>를 김기덕 감독의 기이한 회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청계천 공구상가를 무대로, 강도(이정진)는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간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다리를 부러트리는 인위적인 방식으로 채무자들에게 상해를 입혀 보험금을 뜯어낸다.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홀어머니 앞에서 구타를 당하고, 채무기간을 연장하려고 몸을 팔려고 하며, 급기야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붙이 하나 없이 냉혈한으로 자라온 강도에게 한 여자(조민수)가 자신이 엄마라며 불쑥 찾아온다. 내쫓고 때리며 여자의 정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너를 버려서 미안하다’며 찾아오는 그녀에게 강도는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사라지고 둘 사이의 잔인한 비밀이 드러난다.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하지만 <피에타>는 그 어디에서도 자비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채무자는 몸을 이용하고, 엄마라는 사람은 모성을 이용한다. 목적이 어떠하건 간에 몸과 마음, 그렇게 육신을 이루는 그 모든 것을 이용해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한다.

<아리랑>에서 열변을 토했듯 그는 여전히 ‘불신’에 대한 혐오에 빠져 있는 듯하다. 강도를 향한 ‘돈으로 사람을 시험하는 악마’라는 표현은 <아리랑>에서 대기업 자본을 향해 했던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수취인불명>(2001)에서 창국(양동근)의 엄마(방은진)가 대표적이지만 그의 영화에서 엄마 혹은 모성이라는 존재는 그 스스로 뭔가를 하지 못하던(성모 마리아가 그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을 뿐인 것처럼) 사람이었지만 <피에타>에서는 다르다. 그런 불신 혹은 악마와 직접 대면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살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차에 치어 죽는 영화 속 토끼처럼. <피에타>의 라스트 신은 그의 영화 중 가장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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