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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정치적 선입견 없이 영화제 자체를 평가해주길
주성철 사진 최성열 2012-09-18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조재현 집행위원장

‘직접 와서 보고 평가해달라.’

제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 9월21일부터 27일까지 7일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가 지난 8월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본격적인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품들을 많이 준비했다”는 조재현 위원장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그 와중에도 전규환 감독의 <무게>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베니스에 다녀왔고, 대학로 ‘연극열전’ 프로젝트의 기획자로도 활동 중이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그림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베니스에 다녀온 그를 만나 DMZ영화제에 대해 물었다. 물론 시작은 김기덕 감독에 대한 질문이었다.

-제일 궁금한 게 있다. 이번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만에 본 건가. =‘한국영화의 밤’에서 만났는데 정말 뻘쭘했다. (웃음) 거기서 8년 만에 만난 거다. 그가 <빈 집>(2004)을 준비하면서 헌팅하며 돌아다닐 때 만나고 진짜 8년 만에. 심지어 8년 전 그날도 우연히 만난 거였다. (웃음) 김기덕 감독도 이번 베니스영화제에 내가 간 걸 알고 언젠가 마주칠 거 같으니 늘 초조해했다고 하더라. 그와는 <수취인불명>(2001)으로 베니스에 초청받은 적 있으니, 차라리 외국에서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다. 멀리서 서로를 보자마자 눈짓으로 ‘어어어어’ 하며 천천히 마주 걸어오다가 둘 다 괜히 다른 한국 영화인들한테 먼저 말 걸고 그러면서 다가갔다. 사실 둘 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활짝 웃으면서 기분 좋게 인사했다. 예전에 헤어진 여자친구 만나는 그런 기분이랄까. (웃음)

-<아리랑>에서 김기덕 감독이 ‘악한 내면을 지닌 악역 배우’로 언급한 배우가 당신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혹시 이번에 직접 확인했나. =나도 너무 찜찜해서 늘 물어보고 싶었던 거다. (웃음) 30분 정도 딴 얘기하다가 “<아리랑> 그거 어떻게 된 거야? 그거 나라며?” 하고 물어봤다. 그러니까 “아니야, 사람들이 오해해서 그러는데 그건 악역 연기하는 배우 일반을 그냥 통째로 지칭하는 거야. 너라는 마음은 1%도 없어” 그러더라. 나도 기사 보면서 ‘이거 거의 난데’ 그랬다가 그날 오해가 풀리긴 했다. 물론 1%는 아니라도 0.5% 정도는 있을 수도 있겠지. (웃음) 그날 이후 둘 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3일 내내 밤마다 어울렸다. 마지막 날은 딱히 모이는 자리가 없기에 내가 전규환 감독, NEW와 화인컷 관계자들을 모아서 파티를 열어줬지. 그랬더니 “너는 여전히 꼭 생색내면서 파티한다”고 그러더라. (웃음)

-사실 이번에 출연한 전규환 감독의 <무게> 역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퀴어 라이온’상을 받았다.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웃음) 그 역시 대단한 상이다. ‘베니스 데이즈’ 부문에 출품됐지만 퀴어 라이온상은 경쟁, 오리종티, 베니스 데이즈 모두 포함해서 수여하는 상이라고 하더라. 전규환 감독이 예전 내 매니저였으니 그렇게 옛 영화 동지들이 다같이 베니스영화제에 모인 기분이 참 묘하고 좋았다.

-한때 정말 오래도록 김기덕 영화의 주인공으로 살았다. 이번 수상을 보는 기분이 남달랐겠다. =<수취인불명>으로 베니스, <나쁜 남자> (2001)로 베를린영화제에 갔다. 들어보니 조민수는 <피에타>를 총 5일 촬영했다고 하더라. 뭐야, 난 김기덕하고 5년을 같이했어도 상 한번 받은 적 없는데, ‘부러운 기지배’ 그랬지. (웃음) 민수하고도 워낙 친하니까. 그런데 계속 김기덕 얘기만 하는 거 아닌가. (웃음)

-DMZ영화제가 어느덧 4회로 접어들었다. 예년과 기분이 좀 다른가. =이전까지는 이번 영화제는 어떡해야 하지, 내가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그런 서두는 기분이 좀 들었다면,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이렇게 저렇게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영화제가 준비돼서 사람들을 맞겠구나, 하면서 편안한 마음이다. 다른 영화제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특성도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다. 우리 영화제의 경쟁력을 새삼 느끼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5회를 지나면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경쟁영화제처럼 경쟁부문 위주로 갈지, 아니면 캐나다 핫독스영화제처럼 마켓과 지원프로그램을 더 강화해나갈지 고민 중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영화제로 만드는 게 소망이다.

-그간의 행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김문수의 남자’ 혹은 ‘제2의 유인촌’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김문수 도지사의 경기도 영화제’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수하게 취지와 내용만 봐줬으면 한다. 초청을 하면 간혹 “그거 경기도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만 묻지 정작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가령 지난 6월에 ‘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그 내용은 정말 중국이 뺏어갈지도 모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지키자는 행사였다. 그런데 그 역시 경기도에서 하는 행사라며 색안경을 끼고 본다. 아리랑 아라리요 페스티벌도 그렇고 DMZ영화제도 그렇고 내가 어떤 딴마음이 있어서, 우리 아들이 ‘정치하려고 그런 짓 했어?’라고 묻는다면 정말 아들 볼 면목이 없다. 그럴 때마다 절대 아니다, 오해다, 계속 떠들어봐야 소용없고 나 스스로 뭔가 내용으로 보여주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지사가 누가 되건 정권이 어떻게 되건 무조건 가는 영화제다.

베니스영화제를 찾은 <무게>의 전규환 감독과 배우 조재현, 그리고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왼쪽부터).

-그동안 영화제를 통해 조재현이라는 개인이 영향 받은 측면도 있나. =물론이다.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과에서 ‘다큐멘터리와 연기’라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다큐멘터리에서 출연자가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당신이라면 어떡할까? 하는 화두를 던지며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2회 때 상영한 <수진과 소피 사이>라는 작품이 있다. 한국 이름은 ‘수진’이지만 6살에 프랑스로 입양돼 ‘소피’라는 완전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는 여자가 어느 날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어 한국으로 온다.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서는 어쩔 수 없이 운다. 자기가 왜 프랑스로 가게 됐냐고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어 하고, 자신의 사라진 기억에 대해 들으려 한다. 그렇게 수진의 못다 한 이야기를 직접 해보라고 즉석에서 주문한다. 학생들이 그런 자연발생적인 날것의 감정을 연기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그런 모습을 바탕으로 연극을 꾸려도 좋을 것 같다. =3회 때 상영한 <감독실격>이라는 작품은 일본 AV배우와 그녀 작품의 감독이자 연인이었던 히라노 가쓰유키가 직접 만든 사적인 다큐멘터리다. 오랜 기억을 담아낸 그 작품에서 정작 여배우의 죽음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여자가 죽기 전까지의 상황을 연기해보라고 시켰다. 정말 무수히 많은 버전이 나왔고 내년에는 그걸 바탕으로 <그녀가 죽었다>라는 연극을 만들려 한다. 사실 내가 이 영화제에 참여하기 전까지 다큐멘터리에 대해 뭘 알았겠나. 세상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영화제가 나를 사람으로 만든 거지. (웃음)

-4회 영화제에서 개인적인 추천작이 있다면. =먼저 80살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탁구챔피언대회를 소재로 만든 개막작 <핑퐁>은 정말 재밌다. 두 번째로는 마지막까지 개막작으로 저울질했던 <아이웨이웨이: 난 멈추지 않는다>로, 예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 정부를 비판해온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삶을 담은 영화다. 마지막으로 <후프 드림스> (1994)를 만든 스티브 제임스 감독의 <인터럽터스>다. 한때 폭력을 일삼던 세 사람이 폭력 단속반이 돼 시카고에서 폭력을 몰아내기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TV건 영화건 한동안 연기자 조재현을 만나지 못했다.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일단 <무게>가 연내 개봉할 것 같고, 전수일 감독과 함께 페루에서 찍은 <엘 콘도르 파사>도 있다. 드라마도 그렇고 관심 가는 작품들이 있는데 일단 경기도에서 맡은 일들이 많다. 그냥 얼굴마담으로 있는 건 싫다. 굳이 나올 필요없다고 하는 모임도 나간다. (웃음) 그리고 가끔 취미로 그린 그림들을 가지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달맞이고개 소재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가질 예정이다. 인터뷰 끝나고 또 밤새 그려야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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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무게> 최미애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