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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최대한 명랑하게 죄의식 없이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12-09-25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의 이수정 감독

이수정(49) 감독은 오랜 경력의 영화인이다. 1988년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로 충무로에 발을 내디뎠고,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였던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을 기획했다. 필모그래피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뜨내기 영화인이다. 하지만 <흡혈형사 나도열>(2006), <과속스캔들>(2008> 등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제작사가 바뀌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그의 이름이 사라졌을 뿐이다. 독립영화와의 인연은 더 거슬러 오른다. 이효인, 이정하 등과 함께 1989년 민족영화연구소를 창립하며 활동했으니 ‘독립영화 1세대’.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던 이정하와 결혼 뒤 짧은 공백을 제외하면 한눈팔지 않고 외길을 걸어왔다. <깔깔깔 희망버스>로 연출에 대한 오랜 목마름까지 해소한 그는 앞으로 자본과 노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지속적으로 만들 계획이다.

-어떤 계기로 카메라를 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보니 마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같았다. 1차 희망버스 뒤에 서울에 돌아와서 동행했던 김미례 감독(<외박>)에게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다큐분과회의에 나오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 푸른영상의 김준호 감독, 서울영상집단의 공미연 감독 등이 이미 다큐 제작을 준비 중이었다. 3차 희망버스 때까지는 그들과 함께 이어달리기라는 이름으로 속보 영상을 만들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뤄보고 싶어 개인 작업을 택했다.

-지난 10년 동안 상업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됐나. =경순 같은 또래 여성감독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창작욕이 일었다. 상업영화 투자받는 데 목매달지 말고 뭐라도 찍어보자 싶어서 2008년에 카메라를 샀다. 마침 그때가 촛불집회가 열리던 때였다. 거리에 나온 10대들을 보면서 내 아들은 뭐 하고 있나 싶더라. (웃음) 당시 농구선수였던 아들은 그런 쪽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내 아들도 곧 88만원 세대가 될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들을 모아서 <내 아들 농구선수>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깔깔깔 희망버스>에도 놀면서 싸우고, 웃으면서 싸우는 젊은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미리 계획하고 조직해야 하는 세대다. 반면, 그들은 끌리면 한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주저하는 게 없다. 날라리 친구들은 마음이 동하면 금세 번개치고 영도에 간다.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는, 그들만의 자발성이다. 김 지도위원이 힘든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날라리 친구들이 쉴새없이 트위터로 떠들어준 덕분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중 문화예술인들을 주로 찍고 인터뷰했다. =희망버스를 제안한 송경동 시인을 비롯한 문화예술가들은 한진중공업 이전에도 콜트콜텍, 기륭전자, 대추리 등에서 연대 활동을 펼쳐왔다. 그게 진화해서 희망버스가 태어난 거다. 이전의 활동들과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희망버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는 지난하다. 과거 자료들은 일부러 넣지 않은 것인가. =최대한 명랑하게 가져가자, 어둡고 무거운 것은 배제하자가 편집 원칙이었다. 희망버스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긴 싫었다. 그랬는데 나중에 같이 작업한 친구가 그러더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에서 너무 편하게 지낸 것처럼 보인다고. 프롤로그에 쓴 2003년의 장례식 장면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 뒤에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고민의 다발들은 많지만 단단하게 묶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내 나이에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사적인 고민들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김진숙과 희망버스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함께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편집하는 과정까지 계속됐다. 결과적으로는 어정쩡한 상태가 된 것 같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어 촬영했던 장면들도 다 빼냈는데, 이후 연작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다.

-내레이션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협력 프로듀서가 언젠가 마흔 넘은 아줌마가 희망버스를 타게 된 과정이 더 흥미롭다는 외국인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쉴새없이 당신 생각을 떠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해줬다. 그런 식의 셀프 포트레이트도 흥미로울 것 같았는데 낯간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림과 내레이션을 정교하게 짜맞추지 못해서 미흡하기도 하고.

-개인 작업의 장단점이 있을 텐데. =인터뷰할 때 자연스러운 앵글이 가능하다. 나중에 도와주는 이들이 생겼지만 일부러 내가 들고 찍었다. 사운드는 아쉽다.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서 늘 가까이서 찍어야 했으니까. 자본과 노동에 관한 공부도 좀더 하면서 다음번엔 기술적인 문제들도 보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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