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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새로운 시도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송경원 2012-09-26

픽사 최초의 공주 이야기, 픽사 최초의 여자주인공, 픽사 최초의 시대극, 픽사 최초의 여성감독.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처음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야기만은 그리 새롭지 않다. 11세기경 스코틀랜드의 작은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친근한 애니메이션은 머리카락 한올의 질감까지 살려낸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했음에도 왕국을 구해내는 영웅이나 장엄한 전설과 거대한 전투 대신 어머니와 딸 그리고 가족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선택했다.

스코틀랜드 왕국의 공주 메리다(켈리 맥도널드)는 용맹한 부왕 퍼거스(빌리 코놀리)와 현명하고 정숙한 왕비 엘리노(에마 톰슨)의 관심과 애정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유일한 골칫거리는 엄마의 끊임없는 간섭과 참견. 어린 시절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더 좋아하는 왈가닥 공주님에게 왕국의 공주로서 요구되는 정숙과 위엄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부족장의 아들들이 정식으로 공주에게 청혼을 하고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진 메리다는 신랑 후보들에게 망신을 준 뒤 성을 뛰쳐나온다. 그렇게 금지된 숲을 헤매다 마녀를 만난 그녀는 엄마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을 부탁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원 때문에 엄마가 곰으로 변해버리고 엄마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한 메리다의 모험이 시작된다.

왕국, 마법, 모험이란 말을 들으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것이 작고 아담하다. 무대도, 이야기도, 담겨 있는 메시지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스코틀랜드 지역색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전설이라기보다 민담이나 설화에 가깝고 그만큼 정서적인 공감도 쉽다. 영화 속 갈등은 공주와 왕비의 문제가 아닌 세상 모든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착하고 익숙하다. 무리없는 이야기, 공감가는 성장과 화합의 메시지, 눈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3D의 질감과 표현력,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능청스런 농담과 유머까지 이 애니메이션이 잘 만든 작품이란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조밀하고 탄탄한 완성도가 일품이다. 하지만 그 앞에 픽사의 타이틀을 얻는 순간 문제는 좀 달라진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경쟁자는 다른 작품들이 아닌 픽사의 전작들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였던 전작들에 비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이질적이라 할 만큼 밝고 착하고 가족 중심적이며 보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인 <Brave>보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한 작품의 정체성을 훨씬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가족영화로 결코 나쁘진 않지만 아쉬움만은 어쩔 수 없다. 본편에 앞서 선보이는 아름다운 단편 <라루나>가 픽사의 마법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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