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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아닌 축제 <깔깔깔 희망버스>
이영진 2012-09-26

2011년 1월6일 새벽 5시50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85호 크레인에 오른다. 한진중공업 사쪽이 1년 새 3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데 이어 생산직 직원 400여명을 추가로 감원키로 하자 고공시위에 돌입한 것이다. 85호 크레인은 김 지도위원의 둘도 없는 동료였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무덤이기도 하다. 김 지도위원이 목숨을 내건 고공시위를 시작한 지 157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기적’의 행렬이 시작된다. ‘소금꽃나무’ 김진숙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로 몰려든 것이다. 깃발 대신 기타로 무장한 ‘날라리 외부세력’이 가세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김진숙 지도위원 구하기’에 뛰어든 수만명의 사람들 중 비장한 각오를 가슴에 새긴 투사는 없다. 만사 제쳐두고 그림자 섬 영도에 온 한 청년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노동자인 줄도 몰랐다. 경찰의 삼엄한 경계선을 뚫느라 가방까지 잃어버렸다는 주부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대신 화사한 등산복을 입었다. 그랬던 그들이 하나둘 모여 기꺼이 물대포를 맞고, 노숙을 감내한다. 밤새 난장을 벌이고 신나게 웃는다. <깔깔깔 희망버스>에 탑승한 이들은 투쟁이 아니라 축제를 택했다. 그들이 만약 울음을 참지 못했다면, 309일 동안의 고공농성이 환한 웃음과 벅찬 갈채로 마무리되진 못했을 것이다. 4개월이 넘는 연대의 순간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점은 돋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시간순으로 영상들을 묶어낸 단조로운 구성은 희망버스의 기적을 전달하기엔 역부족이다. 과도한 내레이션 역시 희망버스의 기적을 사적 후일담에 머물게 만든다. 이수정 감독은 절망의 한숨보다 희망의 기운을 좀더 충실하게 담고 싶었다고 했으나 한진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해석이 곁들여졌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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