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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생활 적응기 <간첩>

조국통일과 민족을 위해 한몸 바치고자 고된 훈련을 받고 남한으로 내려온 간첩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의 소유자다. 적어도 남한으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남한에서 겪는 생활고는 버텨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우민호 감독의 <간첩>은 북의 지령과 지원을 기다리는 데 지쳐, 먹고살기 위해 능력을 소진하는 생활형 간첩들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네명의 간첩을 통해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묘사한다. 전셋값 폭등에 돈을 구하려고 뛰어다니는 가장,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쓸쓸한 독거노인,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고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된 싱글맘, 한•미 FTA에 맞서 끊임없는 시위를 벌이며 축산업을 살리려는 간첩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자화상들이다.

<간첩>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네명의 인물이 제 몫을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 이유는 베테랑 간첩들의 남한 생활 적응기가 일회성 웃음을 유발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결국 <간첩>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념과 사상을 초월해 나 자신과 내 가족이 더 중요한 보통 사람들의 애환이 더 비중있게 다루어졌어야 했다.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은 어느 곳이나 똑같다. 단지 직업이 간첩일 뿐,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간첩>은 지금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 기회는 내 이웃처럼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들이 몇번의 웃음과 액션을 위해 희생되면서 사라졌다. <간첩>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결국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뚜렷한 장점 하나 없는 평범한 영화에 머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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