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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장편은, 조금 천천히”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2-10-02

제6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감독 특별전’ 여는 이우정 감독

‘과거’와 ‘기억’이 지배하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섞여드는 ‘두 사람’. 이우정 감독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전무후무한 주인공을 내세운 <송한나>부터 두 여고생의 불안한 마음을 담아낸 <애드벌룬>까지 그의 영화들은 마치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펼쳐 죽 찢어낸 걸 그대로 영상화한 것처럼 미시적이고 세밀한 감정 표현이 압권이다. 두 영화 사이에 놓인 <옷 젖는 건 괜찮아>와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에도 특유의 예민한 식물 같은 여자들이 등장해 보는 이의 눈앞에 모호한 형태로 그의 공상을 그려놓는다. ‘아주 가까운 너와 나만 아는 얘기야’라고 속삭이는 듯 덜 자란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만드는 사람. 제6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감독 특별전’의 주인공 이우정 감독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감독 특별전에 초청된 것을 축하드린다. =민망했다. 주위에서 벌써 회고전 하냐고 놀려서. (웃음) 학교 다닐 때 만든 것도 섞여 있어서 창피하기도 했다.

-개막작으로 <송한나>와 <애드벌룬>이 선정됐다. 감독으로서 두 작품을 보는 소회가 어떤가. =<송한나>의 촬영은 사실 2006년에 마쳤다. 실제로는 두 작품 사이에 5~6년 정도의 공백이 있다. <송한나>를 만들 땐 현실에서 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못하는 그런 걸 영화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애드벌룬>과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는 개인적으로 끔찍하게 생각하는 장면들, 공포를 느끼는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걸 영화로 만들었다.

-인과적으로 완벽히 설명되는 감정이라기보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하는 식의 감정이 많이 보인다. 영화감독 이우정의 세계는 그런 순간적이고 미성숙한 감정이 엉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 아닌데 머릿속에서 안 떠나고 자꾸 생각나는 것들을 영화로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명확하게 말로 설명이 되면 영화로 안 찍을 거다. 주변에서는 소녀감성 그만하라는 말도 하는데. (웃음) 내 안에서 정리가 안돼 항상 이게 뭐지, 하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작품을 시작한다.

-<애드벌룬>은 감독과 같은 세대의 관객이 봤을 때, 특히 그런 날들을 거쳐온 여성 관객이 봤을 때 감흥이 남다른 작품이다. =<애드벌룬>엔 직접 겪은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갔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이 가진 추억은 다들 비슷하지 않나. 그래서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내가 이 두 소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보이면 안될 것 같아서 거리를 두고 찍으려고 했다. 내가 뭐라고 함부로 그들을 이해한다 하겠나. 뜬소문같이 그 시절을 흘러가는 영화를 찍고 싶었던 거다. 평소 시나리오를 쓸 때는 다른 하는 일이 없다. <애드벌룬>을 하기 전 이상하게 중고생 시절에 꽂혀서 ‘어떤 애들이 있었지’ 하고 계속 생각하고, 그때의 친구들에게 홈페이지 비밀쪽지로 안부도 남겨놓고 그랬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다.

-어쩌면 특유의 섬세한 감정이 단편영화라는 포맷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장편을 구상한 적은 없나. =지금까지는 분량이 그 정도로 써져서 그렇게 찍었다. 지금도 뭔가 쓰고 있는데 쓰다 보니 길어지더라. ‘이게 말로만 듣던 장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장편은 심적으로 좀 무섭다. 더 길어지면 그 긴 시간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괜히 섣부르게 했다가 망하면 도망갈 구석이 없으니까, 조금 천천히 하고 싶다. 용기있게 확 덤비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감독 아닌 배우로서도 몇편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배우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속적으로 이어질 작업인가. =나는 배우라고 평가받을 만한 위치도 아니고. 아는 사람들이 영화 찍을 때 ‘너 이런 거 한번 해봐라’ 할 때는 재밌게 가서 하는데 ‘어떤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망은 없다. 그래도 가끔씩은 누가 불러줬으면 좋겠다. 잘생긴 오빠들이랑 노는 역이라면 언제나 하고 싶다.

-차기작 연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영화로 만들어질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쓰고 있는 게 있다. 자매 이야기다. 요즘엔 뻔한 감정들이 좋다.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뻔한 억울함, 뻔한 분노, 그런 게 좋더라. 두 여자가 뻔한 방식으로 미친년처럼 발광을 하는데, 보고 있으면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얘기 같기도 한 그런 얘길 만들고 싶다.

-연출자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옛날 얘기만 한다는 말을 듣는다. 계속 이것만 하면 보는 사람들도 재미없을 것 같다. 소박한 목표라고 하면 지금은 과거의 공간에 머무르지만 앞으로는 좀더 나중의 이야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아직은 내가 미련의 아이콘이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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