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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우라는 이들이 열심히 하는 건 한국과 똑같더라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신작 <설국열차> Snowpiercer

감독 봉준호 / 원작 장 마르크 로셰트(그림), 벤자민 르그랑, 자크 로브(글) / 각색 봉준호, 켈리 마스터슨 / 촬영 홍경표 / 음악 마르코 벨트라미 / 출연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옥타비아 스펜서, 송강호, 고아성 / 배급 CJ E&M / 개봉 2013년 여름

“영원한 겨울, 얼어붙은 백색의 세상.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향하여 열차가 달린다. 절대 멈추지 않는 열차. 바로 1001량의 설국열차.” 원작에서 설국열차는 이렇게 묘사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문명의 마지막 흔적.” 프랑스 만화 원작의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지구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와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과 식량을 갖춘 설국열차에 올라 이동을 시작하는데, 자연스레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고갈되면서 열차는 무법천지로 변해가게 된다. 여기서 기차는 마치 노아의 방주 같은 존재다.

<설국열차>는 기차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거의 대부분으로 ‘기차’ 그 자체를 치밀하게 담는 액션 스릴러영화가 될 것 같다. 뒤에서 앞으로 길게 이어진 일직선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설국열차>의 핵심이다. 더불어 제작사는 한국에 적을 두지만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영화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소스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도 참여하는 <설국열차>는 예산이 약 4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90% 이상 영어권 배우가 출연할 예정이다. 80, 90m 이상 긴 길이의 대형 기차 세트가 필요하기에 <아마데우스>(1984)를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1996), <반 헬싱>(2004), <지.아이.조>(2009) 등을 촬영한 체코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 3개월 가까이 촬영했다. <설국열차>를 두고 “더이상의 기차영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봉준호 감독의 자신감이다. 한창 편집 작업 중인 그와 긴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마이클 클레이튼>(2007)의 틸다 스윈튼.“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라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는 게 봉준호 감독의 얘기.

-체코에서의 긴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소감이 어떤가. =스케줄대로 잘 마치고 7월19일 귀국했더니 폭염주의보가 나면서 너무 더웠다. 거의 혼절할 지경이라 ‘프라하에서 한 3주만 더 있다 올걸’ 그랬다. (웃음) 2개월4주간, 총 72회차,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잘 찍었다. 스케줄이 타이트했는데, 프리 프로덕션을 꼼꼼하게 진행한 덕분이다. 나를 비롯해서 박찬욱, 김지운 감독님 모두 해외에 나가면서 개과천선한 것 같다. 툭하면 100회차를 넘기던 양반들이었는데. (웃음) 그러면서도 그들의 원래 스타일이 워낙 강력하니 <스토커>와 <라스트 스탠드>, 각자의 영화에 그 스타일이 여기저기 어떻게 배어나올까 무척 기대된다. 이거 남 말 할 때가 아닌데 하여간 다들 그동안 배운 도둑질이 어디 가겠나. (웃음) 어쨌건 그 두 사람은 각각 폭스 서치라이트와 라이온스 게이트가 만드는 할리우드영화고 <설국열차>는 프랑스와 할리우드가 참여하는 한국 중심의 합작영화라 조금 시스템이 다르다. 스탭이나 배우들은 90% 정도가 해외 인력들이지만, 찍어나가는 방식이나 현장 진행은 근본적으로 한국영화라고 생각한다.

<아웃랜더>(2008)의 존 허트. <설국열차>는 아직 공개된 스틸이 없다.

-애초에 <설국열차> 원작에 끌렸던 이유는 뭔가? 그리고 원작과 어느 정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나. =처음 접한 것은 2005년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만화 쇼핑을 하다가 평소처럼 신간들을 살펴봤고 우연히 집어든 작품이 바로 <설국열차>였다. 가만히 선 채 다 읽었을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어권 국가에서 출간된 적이 없어서인지 판권을 사게 된 것도 큰 행운이었다. 기후재앙으로 새로운 빙하기가 도래하고, 기차 안은 가난한 자와 부자로 나뉘며, 또 기차 맨 앞에 신비로운 엔진이 있다. 나중에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원작의 그런 초기 설정 정도만 남겨두고 사건과 스토리를 모두 바꿨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작업한 영화들 중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가장 긴 시간이 걸렸는데, 그렇게 새로운 구상을 더하고 스토리를 새로 만들어나가면서 1년이 걸렸다. 개인적으로 기차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강력하게 끌렸다. 게다가 비주얼적으로 보자면 기차 바깥은 꽁꽁 얼어붙은 세상이고, 그걸 보며 달리는 기차 안에 생존자들이 있다는 이미지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싸우기도 하고 같이 살자고 힘을 모으는 모습에서 인간의 본질이랄까, 이상한 서글픔 같은 게 느껴졌다.

-<설국열차>는 기차영화에 대한 매혹에서 출발했고 무수히 많은 기차영화들을 섭렵한 것으로 안다. 토니 스콧의 유작인 <언스토퍼블> 역시 봤을 것 같은데 그 사망 소식을 듣고 어땠나. =토니 스콧의 오랜 팬이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충격이었다. 할리우드에서 그만한 장인은 흔치 않으니까. 말한 대로 프리 프로덕션 초창기에 홍경표 촬영 감독과 재미 삼아 <언스토퍼블>을 보긴 했다. 영화 내내 기차가 나오는 영화가 이젠 정말 드물어 반가웠다. 그외에도 독일 점령군의 프랑스 고미술품 운반열차와 그걸 저지하려는 프랑스 철도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존 프랑켄하이머의 <대열차작전>(1964)도 함께 본 작품 가운데 하나다. 토니 스콧보다 한달 앞서 세상을 뜬 배우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북극의 제왕>(1973)도 대단한 영화다. 기차영화만의 독특한 컨벤션과 순도 높은 마초들의 대결이 정말 파워풀하다. 늘 얘기했지만 <괴물>때 ‘한강에서 더이상 영화를 못 찍게 해주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기차영화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다들 ‘이제 더이상 기차영화를 찍기는 글렀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기차로 뭘 더 하려고 하지 마라’ 하는 욕심 혹은 앙심이 있다. (웃음)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루카 구아다그니노의 <아이 엠 러브>로 방한했던 틸다 스윈튼은 당신의 열렬한 팬임을 고백한 바 있다. 그런 배우를 그로부터 머지않은 시기에 영화로 조우한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물론 촬영현장에서의 틸다 스윈튼이 어땠는지도.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기사를 통해 틸다 스윈튼이 <괴물>(2006)을 무척 좋아한다는 얘기는 접했었다. 그러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칸에 갔을 때, 마침 틸다 스윈튼도 경쟁부문에 출품된 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로 왔었다. 만나자마자 서로 팬임을 고백하면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닭살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서로 하트를 뿅뿅 발사하며(웃음) ‘뭐가 되건 같이 작품 하나 해보자’고 바로 의기투합했다. 게다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괴물>의 광팬이었다. 그러니까 시나리오가 나와서 내가 어떤 역할을 부탁하고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꼭 좀 해보자고 해서 출발한 거다. 그러다보니 <설국열차>를 진행하면서 틸다 스윈튼으로 인해 바뀐 장면들도 꽤 있다. 게다가 틸다 스윈튼이 송강호를 무척 좋아해서 ‘송강호와 함께 나오는 신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할 정도였다. (웃음) 현장에서의 틸다 스윈튼을 말하자면, 연기를 정말 악착같이 하더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배우라는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하는 건 똑같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 이전 영화에서 봤던 틸다 스윈튼의 모습은 잊어도 좋을 것 같다. 그녀에게서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들이 <설국열차>에 많이 담겼을 거다. 어쩌면 그런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웃음)

<푸쉬>(2009)의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가 지닌 무게감도 <설국열차>에서 만만찮게 뿜어져 나올 것 같다. =<해리 포터> 시리즈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그리고 <신들의 전쟁>의 제우스인 존 허트도 예전부터 팬이었는데 직접 만나 보니 역시 대배우의 풍모와 기품이 느껴졌다. 한국영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내 영화들 중 <마더>(2009)를 굉장히 좋아하더라. 놀라울 정도로 <마더>에 대해 구체적인 장면들을 예로 들어가며 물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설국열차>에는 제이미 벨, 이완 브렘너, 알리슨 필, 옥타비아 스펜서 등 주연 못지않게 비중 있는 조연들이 많다. 돌이켜보면 매 회차 신 스틸링에 대한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

-영어권 배우들의 경쟁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역시 송강호다. 당신으로서는 <괴물> 이후 <마더>를 지나 7년 만에 다시 옛 페르소나와 조우한 것이기도 하다. =<스타워즈>의 한 솔로 혹은 <미래소년 코난>의 다이스 선장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쪽 편 같기도 하고 저쪽 편 같기도 하고, 겉도는 거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데 하여간 다들 예상하듯 재밌는 캐릭터다. (웃음) 영화로는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고 그때와는 비중도 다르고, 또 조금 다른 시스템에서 작업하게 된 것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역시 송강호만의 매력을 뿜어낸다. 그라운드의 홍명보 같은 <설국열차>의 리베로라고나 할까.

<설국열차>의 원작 만화 표지.

-<설국열차>는 질주하는 액션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액션의 비중이 높기도 하고, 다른 영화들에서 보지 못한 액션 신들이 출몰할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오직 기차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동적인 상황들에 대해 고민했다. 일직선의 기차 안에서 와이어 액션을 하진 않을 거고 홍콩의 마셜 아트 같은 액션도 없을 거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 있잖나. ‘바나나는 길어,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그런 연쇄적인 느낌? (웃음) 바로 그 노래에 기차영화의 본질이 있는 것 같다.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돌진과 질주, 그 긴 일직선에 내러티브와 액션의 목표가 한데 담겨 있다.

-현재 열심히 편집 중인 것으로 아는데 개봉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이후 어떤 작업을 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체코에서 귀국한 뒤 한주 쉬고 지금까지 계속 편집 중인데 10월 중순까지는 편집을 계속할 것 같다. 그런 다음 LA와 런던으로 가서 ADR을 하는데 믹싱은 라이브톤에서 한다. 그렇게 후반작업도 촬영현장의 인적 구성만큼이나 다양한 국가에서 이뤄진다. 음악은 <헬보이> <아이, 로봇> <3:10 투 유마> <허트 로커> <노잉> 등을 맡았던 마르코 벨트라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무척 섬세한 아저씨다. (웃음)

-1년여 집중적으로 <설국열차>에 매달려왔고 내년 여름 개봉예정이라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은 혹시? (웃음) =한 작품에 들어가면 딱 사라지는 스타일이라, 조용하고 길게 오래 작업하다보니 <설국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체감온도가 내려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웃음), 나로서는 사실 계속 쉼없이 달려왔다. <마더> 끝나고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설국열차> 다음 영화도 준비하고 있긴 한데 관심이 무서워서 절대 얘기는 안 하고 있다. 이거 뭐 영화 만들면서 자꾸 이런 꼼수만 배워서. (웃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송강호.<스타워즈>의 한 솔로 혹은 <미래소년 코난>의 다이스 선장?

봉준호 영화 중 가장 스타일리시할 박찬욱과 김지운이 기대하는 <설국열차>

내가 <설국열차> 제작자이기도 하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음… <설국열차>에서 기대하는 건 돈벼락? (웃음) 먼저 틸다 스윈튼, 존 허트, 크리스 에반스,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같은 놀라운 배우들의 캐스팅이다. 거기에 송강호와 고아성까지 더해지니 그 연기의 향연이 정말 볼만할 것 같다. 봉준호의 첫 번째 공상과학(Sci-Fi)영화임과 동시에 이전과 달리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그의 재능과 창의성이 어떻게 발휘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큰 재미가 될 것이다. 내가 볼 때 봉준호의 영화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다. 박찬욱

인간적으론 너무 좋지만 감독으로서 너무 얄미운 사람이 봉준호다. 저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이고, 평상시에 무슨 생각을 하기에 영화를 저렇게 만들어내는 걸까, 궁금할 때가 많다. 봉준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가늘고 긴 통로를 아주 진저리치도록 빠져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건 차원이 다른 어떤 경지다. 나는 그가 그간 보여준 길고 좁은 통로로의 치밀한 몰입도가 <설국열차>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것 같다. 내년에 또 영화가 개봉하면 ‘봉준호, 진짜 얄밉고 부러운 자식이네’ 하겠지. (웃음)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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