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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삶의 중심 <서칭 포 슈가맨>

197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의 부둣가 뒷골목, 담배 연기 가득한 한 술집에서 손님들을 등지고 노래하던 가수가 있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프로듀서가 그의 앨범 두개를 냈지만 미국에서는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여기서부터다. 그의 첫 번째 앨범 ≪콜드 팩트≫(Cold Fact)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우연히 건너가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은 극심한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나치 독재의 부활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끔찍한 정치적 현실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있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잡혀갔다. 어떠한 외국 공연도 허가되지 않았으며, 유통되는 모든 음반은 일일이 검열되어 폐기되었다. 이때, 앨범 제목처럼 ‘콜드 팩트’, 차가운 현실 앞에 등장한 로드리게즈의 노래들은 남아공에서 저항운동의 시작이자 탈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제때에 도착한 노래. 하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노래와 함께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앨범은 남아공에서 비틀스의 ≪애비로드≫(Abbey Road) 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만큼 많이 팔렸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신문에서는 로드리게즈를 찾아줄 ‘음악평론가 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드 팩트≫에 실려 있는 노래의 제목을 따서 지은 ‘슈가맨’이라는 애칭의 가수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서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긴 배경 설명이 끝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스웨덴 텔레비전에서 엘튼 존이나 비욕 같은 팝스타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어냈다.

‘서칭 포’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영화는 슈가맨, 로드리게즈의 흔적을 쫓아가지만 결국 영화가 찾아낸 것은 로드리게즈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어긋남’이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사실 질문은 ‘그는 어디에 있는가?’라기보다 ‘우리는 왜 그를 찾지 못했는가?’가 될 것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렸지만 ‘돈의 흐름’ 바깥에 있었고, 유명세와 전혀 무관한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드라마틱한 삶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그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때 다큐멘터리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것이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로드리게즈를 찾는 과정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그 삶의 드라마를 담는다. 여기에 그가 발표했던 많지 않은 노래들이 로드리게즈의 40여년 삶의 이야기와 함께 배치된다. 수평 트래킹으로 도시를 걷는 외로운 로드리게즈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서칭 포’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다 밝혀지고 난 다음 한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선 ‘탐정’들이 3년 만에 그를 찾아낸 것은 1997년이었으며, 그 다음해인 1998년,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 성대한 ‘커밍 아웃’ 콘서트를 열었다. 말릭 벤젤룰이 아프리카 여행 도중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이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2006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차’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어디쯤, 왜 이 이야기를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꺼내들었는지가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며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로드리게즈의 또 한번의 때늦은 이 도착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어쩐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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