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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네오리얼리즘 적자의 위대한 증명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 프란체스코 로시, 1979년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 속 장면. 사진 속 발코니가 <이탈리아 횡단밴드>에도 등장한다.

2층에 올라가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겠단다. 고속으로 달리고픈 치들은 직선으로 뚫린 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하물며 지그재그로 난 길은 말해 뭐하랴. 그들은 그런 길일랑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시간이 소중한 줄 알면서 정작 시간이 뭘 해줄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탈리아 횡단밴드>에서 음악제에 나설 네 남자는 마차를 대동하고 길을 떠난다. 차로 몇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는 그렇게 해서 열흘 동안의 낭만적인 여정으로 탈바꿈한다.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촬영하면서 그들은 뱀의 몸처럼 구불거리는 길 위를 잘도 걸어간다. 황량한 산간 지대를 통과할 무렵 누군가가 카를로 레비와 그의 자서전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에 대해 말을 꺼낸다. 이어 레비가 머물렀던 산간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포도주 잔을 높이 들어, 밴드가 정체성을 찾도록 영감을 준 그를 기린다. 그뿐인가, 영화에서 레비 역할을 맡은 지안 마리아 볼론테에게 건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프란체스코 로시가 네오리얼리즘의 진정한 적자임을 증명한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를 처음 본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이후 간혹 떠올릴 때도 있었으나, 200분이 넘는 드라마를 다시 볼 엄두를 못 냈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를 보다 온몸이 짜릿해지는 걸 느꼈다. 로시의 영화와 재회할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레비의 원작은 누군가 오역한 제목-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로 알려져 있다(그리스도마저 도착하지 않은 오지에 관한 글임을 안다면 절대 붙이지 못할 제목이다). 로시 영화의 완전판은 4부작 TV드라마지만, 요즘 접할 수 있는 버전은 145분짜리 극장판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214분 버전의 유일한 통로인 영국 아티피셜판 비디오를 여태 버리지 않았다. 어지간한 영화라면 오래된 비디오쯤 포기했을 터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는 그냥 훌륭한 영화가 아니라 위대하다고 평가받아 마땅한 작품 가운데 한편이다.

TV판과 극장판은 동일한 장면으로 시작하면서도 다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극장판은 깊은 감동을 줄지언정 TV판의 긴 한숨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레비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맞선 죄로 남부 루카니아 지방의 벽지로 유배된다. 그리스도와 시간과 희망과 이성과 역사가 하나같이 머물기를 거부한 땅에서 레비는 소작농, 민중과 교류하며 상류층 지식인의 허울을 벗어나간다. 가난에 찌들고 착취당하는 소작농들은 몰락이 예정된 지역에 발을 붙이고 산다. 마법 같은 상상력, 특유의 성실함으로 생사의 문제를 통과하는 그들 곁을 지키면서 레비는 진짜 삶에서 길어올린 슬픔과 분노, 그리고 지혜가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애초에 레비는 산간 마을에서의 시간을 일종의 허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삶에서 잠시 빌린 그 장소와 그 시간에서 비로소 소중한 빛-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빛이 어디 레비에게만 보이겠나. 혹시 지금 다급한 마음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다면 로시의 영화를 보거나, 그게 힘들 경우 <이탈리아 횡단밴드>를 보기를 권한다. 단 하나의 진리라도 구할 수 있다면 인생에 있어 몇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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