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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침공 <아이언 스카이>
송경원 2012-10-24

2018년 미합중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킴 잭슨)은 재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달 탐사선에 흑인 모델 제임스 워싱턴(크리스토퍼 커비)을 실어 보내고 워싱턴은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나치가 달 뒤편에 거대한 기지를 건설한 채 몰래 숨어 있었던 것. 달에서 살아남은 나치의 시간은 뛰어난 전함 건조술을 제외하곤 2차대전 당시에 머물러 있다. 워싱턴이 들고 온 휴대전화를 활용해 미완성이던 거대 전함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게 된 젊은 사령관 클라우스 아들러(고츠 오토)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지구로 향한다. 포로가 된 워싱턴은 나치 교사이자 아들러의 연인인 레나테(줄리아 디에체)의 도움으로 세뇌된 척해 함께 지구로 귀환한다. 그리고 3개월 뒤 지구를 점령하기 위한 나치의 침공이 시작된다.

티모 부오렌솔라 감독의 <아이언 스카이>는 독특하고 기발한 유럽 SF영화다. 지구를 침략하는 것이 외계인이 아니라 달 뒤편에 숨어 있던 나치라는 재미난 설정은 영화 초반 관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하지만 <아이언 스카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장르적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SF라기보단 정치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아이언 스카이>가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공식은 외계 침략자는 반드시 멍청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SF적인 상상력은 설정에서 멈추고 이야기의 행간은 서로를 불신하는 세계 정치,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채워져 있다. 오바마를 빗댄 ‘Yes, She can’ 같은 대선 구호나, 대선 홍보를 위해 달에 흑인을 보낸다는(심지어 이름이 제임스 워싱턴이다) 간접적인 설정부터 약속을 어긴 미국을 비난하는 나라들을 향해 “우린 항상 어겨.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야”라는 직접적인 대사까지 영화는 철저하게 미국의 패권주의를 조롱한다.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잘 만든 이야기라고 말하긴 힘들다. 전개는 말이 안되고 인물들은 모두 바보 같으며 설정은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하지만 그런 허술함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언 스카이>는 그 설정만큼이나 이질적이고 독특한 유머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정교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바보 역할을 하고 있는 희극인이 진짜 바보라고 비웃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는 정교함 따윈 애초에 안중에도 없는 듯 어이없는 전개를 늘어놓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농담을 위해 필요한 장치일 뿐이다. 이를테면 히틀러의 말년을 다룬 영화 <몰락>을 패러디하는 장면 등은 그 자체로 거대한 농담이다.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지는 거다. 장르 팬들이 기뻐할 만한 디테일한 설정과 디자인, 패러디와 조롱으로 빼곡한 종합선물세트라고나 할까. 아는 만큼 보이는 탓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지만 근래 보기 드문 익살만큼은 누구나 인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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