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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진] 내게 없는 것을 원망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즐기겠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2-10-26

7년 만에 두 번째 작품 내놓은 <용의자 X>의 방은진 감독

언제였더라. 방은진 감독이 연출 데뷔작 <오로라 공주>를 내놓았던 해가 말이다. 전국 관객 110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약간 넘은 성적과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까닭에 두 번째 작품을 내놓기까지 이리 오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로라 공주> 이후 거의 7년이 지난 지금, 그가 두 번째 장편영화를 들고나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용의자 X>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며 전개되는 논리적인 이야기와 강력한 반전으로 유명한 원작이 그의 손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했냐고? 취향에 따라 저마다 다른 판단을 내놓겠지만 분명한 건 <용의자 X>는 방은진의 색깔이 녹아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곧 개봉을 앞둔 어느 가을날 만난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예뻐진 것 같다. =정말? 머리를 길러서 그런가.

-그런 것보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얼굴이 좋아진 것 같다. =나 원래 예뻤다. (웃음) 안 그래도 제작보고회가 끝난 뒤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남자 생겼냐고 묻더라.

-개봉을 앞둔 지금,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초조해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숨고 싶지. 편집해놓고 보니까 온갖 생각이 들더라. 기분이 착잡하고, 심판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개봉일이 가까워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주사위가 던져졌으니까.

-지난해까지 <이화에 월백하고>(가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오로라 공주>를 찍었던 최영환 촬영감독과 오랜만에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그가 왜 영화를 안 찍냐고 묻더라. 자기는 <오로라 공주> 이후 8편이나 찍었다면서.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 뜨끔했다.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 있긴 한데, 내가 좀더 치열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더라. 되돌아보면 그때가 슬럼프였던 것 같다.

-<용의자 X>를 기획, 개발한 CJ엔터테인먼트는 “<오로라 공주> 때 스릴러와 멜로를 잘 버무린 솜씨를 보고 방은진 감독이 <용의자 X>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더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였다. 피곤해서 숙소에서 자려고 하는데, 당시 CJ엔터테인먼트 김정아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나와”라고 해서 <오로라 공주> <만추>의 남종우 프로듀서와 함께 셋이서 만났다. 이런, 이런 영화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좋다, 나와 함께하자”고 하더라.

-그게 <용의자 X>였나. =그렇다. 나중에 CJ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기획, 개발이 완료됐고, 시나리오도 나왔다. 감독만 붙으면 된다. 나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함께.

-감독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망설였다던데. =읽어보니 <오로라 공주>와 ‘톤 앤드 매너’가 흡사하겠다 싶었다. <오로라 공주> 이후 휴먼드라마를 하려고 했고. 최근까지 준비했던 장르도 섹스코미디(<이화에 월백하고>)였고. 데뷔작과 다른 색깔의 작품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럼에도 <용의자 X>를 선택했다. =그때 KM컬쳐와 함께 준비하던 <이화에 월백하고>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조금만 더 쓰면 들어갈 것 같은데 자꾸 안 들어가니까. 반면 <용의자 X>는 합류하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었고. 그래서 “<용의자 X>를 하고 오면 안되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하고 나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은 읽어봤나. =책이 출간됐을 때 읽어봤다. 당시 읽자마자 ‘아! 이걸 영화로 만들면 죽이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의 두뇌 대결이 중심이었던 원작과 달리 <용의자 X>는 물리학자 캐릭터를 제외했다. 대신 물리학자 캐릭터의 일부를 형사에 집어넣음으로써 형사 민범(조진웅)을 만들었다. 자칫 사건의 긴장감이 줄어들 수 있는 선택일 수도 있는데. =일본에서 만들어진 리메이크작 역시 원작의 구도를 그대로 따랐다. 소설이라면 모든 인물의 설명이 가능하지만 영화에서 그걸 모두 다루다보면 산만할 수 있다. 누가 더 천재인가라든지 두 천재간의 두뇌 싸움 등은 이미 소설과 일본영화에서 충분히 다뤘으니까 우리는 다르게 가야겠다 싶었다. 그게 사건 이면에 있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 이시가미의 감정이 엄청나다고 느꼈다. 그의 감정을 훼손하지 않은 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석고(류승범)와 화선(이요원)에 비해 민범 캐릭터는 잘 보이지 않더라. =사건을 끌고가는 민범과 화선의 알리바이 추적 대결을 많이 덜어내야 했다. 민범에 집중하면 석고가 안 보이니까. 사실 영화에서 석고는 화선에게 전화하는 것 말고는 하는 행동이 거의 없다. 민범의 동선을 과감하게 쳐내고, 석고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류승범에게 “잘 걸을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석고는 그간 류승범이 한번도 연기하지 않은 유형의 캐릭터였다. 말투도 평상시의 하이톤에서 많이 낮춰야 했고. 행동도 신체를 움츠려야 했다. 현장에서 석고가 걷는 신부터 찍어야 했는데, 촬영 전 (류)승범과 석고의 걸음걸이에 대해 논의했다. 어떻게 걸을까 무척 궁금했는데, 현장에 석고가 되어 나타났다. 드디어 캐릭터를 잡았구나 싶었다.

-이요원에게 “원숙미가 있는 여자”를 주문했다. =화선은 존재만으로 석고를 어루어만질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이어야 했다. 배우로서 감정을 너무 밝은 톤으로 가면 튀게 되고, 반면 감정을 떨어뜨리면 너무 축 처져 보인다. 그 균형을 잡기가 힘든 캐릭터다. 전작에서 대체로 밝은 이미지를 보여준 이요원에게는 도전이었고. 평소 이요원의 성격이나 생활 역시 화선과 너무 달라서 본인이 연기하기도, 감독으로서 디렉팅하기도 쉽지 않았다. “평소 딸한테 어떻게 하니?”라고 물어보면 “잔소리를 아예 안 한다”더라. “애는 어떠니?”라고 물어보면 “자기가 알아서 해요. 잔소리는 아빠가 한다”고 그러고.

-영화의 초반부, 화선이 전남편을 죽이는 시퀀스와 석고가 화선의 집을 어렵게 찾는 시퀀스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쓴 것 같더라.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이지만 정교하게 찍어야 했다. 촬영 전 무술감독의 액션 합에 따라 연습실에서 리허설도 했고. 세트 촬영 때 이틀 동안 찍어야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화선이 전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화선과 일면식 정도 나눈 석고가 화선의 집을 찾을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화선의 동선은 이랬다. 전남편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고, 그가 자신의 조카를 함부로 대하고, 그러다가 조카를 너무 때리니까 순간 욱하는 걸 순서대로 보여줘야 했다. 석고 역시 어떤 타이밍에서 옆집에서 벌어진 소리를 들어야 하고, 누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화선의 집 벨을 누르고 하는 걸 고려했다.

-데뷔작 <오로라 공주> 이후 거의 7년 만에 내놓는 두 번째 장편이다. =인간 승리다. 나라고 7년이나 걸릴 줄 알았겠나. 한 작품 했으면 두 번째는 좀 수월하게 찍을 줄 알았다. <오로라 공주>가 여러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고, 흥행 성적도 110만명 정도 불러모으는 등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더라. 어쩌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기 때문에 영화 만드는 게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이게 호락호락하고 쉽게 정복되는 거라면 ‘이거 해봤으니까 다른 거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CJ엔터테인먼트 내년 라인업을 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작품이 차기작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정우가 캐스팅됐다. =일단 이게 잘돼야지. <집으로 가는 길>은 프리 프로덕션 중이다. 시나리오도 각색해서 넘겼고.

-다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배우들이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면 어떡하나. 하겠다, 안 하겠다, 이런 생각은 구체적으로 해보지 않았다. 필요한 뭔가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서 하게 되겠지.

-남자친구는 없나. =그냥 뭐. 그러고보니 요즘은 사람들이 내게 “연애 안 하냐?”고 안 물어본다.

-물어보니 어떤가. 좋나. =응. (웃음) 예전에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못 살까 하며 부러워했다. 지금은 이렇게 사는 건 내가 가진 것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원망하기 전에 지금 내게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자,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영화가 더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그렇게 얻어진 성과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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