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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최대한으로 솔직해지려 노력했다”

<라잇 온 미> 감독 아이라 잭스

누군가가 말하길, 사랑에는 면역효과가 없다고 했다. 상대가 누가 됐든, 그것이 몇 번째든, 사랑은 매번 달콤하게 시작해서 점차 피로해지다 끝내 소멸한다. 그 익숙한 과정을 <라잇 온 미>의 에릭과 폴도 통과한다. 그래도 그들의 여정이 특별하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베어상(퀴어영화상)을 수상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이 영화가 아이라 잭스 감독 본인의 10년에 걸친 경험담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 자신의 오래된 흉터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그의 솔직함과 용기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욱신거리게 한다. 프레임 밖에 남겨진 나머지 이야기가 묻고 싶어진 것도 그래서다. 여기 그가 서면으로 보내온 답변을 싣는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영화인가. =몇년 전 어느 날이었다. 아주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했던 10년의 연애를 끝내고 그와 함께 마지막으로 그리니치 빌리지 8번가를 걷고 있는데, 10년 전에도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 두개의 순간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각색할 때 어떤 원칙이나 조심하려고 한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발견해내려면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과거에 지배당해서는 안된다.

-주인공들이 자신과 옛 연인을 모델로 한 인물들인 만큼, 주연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봤는지 궁금하다. =얼마나 열려 있는 사람인지, 인간적으로도 흥미로운 사람인지를 중요하게 봤다. 거기다 투레 린드하르트와 재커리 부스는 ‘케미’도 굉장히 좋았다.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열정을 갖고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남녀여도 무관할 이야기다. 궁극적으로는 보편적인 러브스토리가 되길 바랐나. =<포티 셰이즈 오브 블루>라고 멤피스에 사는 러시아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것도 러시아인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한 인간의 고독에 관한 영화였다. <라잇 온 미>도 동성애자나 이성애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문제에 관한 영화로 만들었다. 요즘 게이 남성들의 삶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 것은 사실인데, 그것 또한 묘사가 구체적일수록 영화가 보편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릭이 폴에게 물어본다. 또 싸울 게 두렵지 않느냐고. 폴은 그래도 용기를 내려 하고, 에릭은 더이상 용기가 남아 있지 않아 관계를 끝내려는 것 같다. 사랑을 지속시켜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용기라고 본 건가. 당신에게 사랑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원한다면 술부터 한잔하자!

-폴은 마약에 중독돼 있고, 에릭은 폴과의 사랑에 중독돼 있다. 사랑도 건강한 사랑과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현재 나는 크레딧 시퀀스에 사용된 그림의 작가 보리스 토레스와 연인 사이다. 그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고르의 모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에게 솔직하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렇게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10년간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라잇 온 미>는 성장영화다. 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자신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상대를 놓아줄 줄 알게 되니까.

-크레딧 시퀀스에 쓰인 작품들이 주인공들의 몸이나 섹스를 찍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게 느껴진다. =당연하다. 그의 작품에 스며 있는 유머와 따뜻함과 성적 해방감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홈페이지(www.boristorres.com)에 들어가면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 영화를 통해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게이로 살다보면 커밍아웃의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우리는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매번 새로운 벽장에 자신을 가둔다. 이 영화는 그 벽장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이제까지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솔직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솔직해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은. =새 장편 <러브 이즈 스트레인지>를 준비 중이다. 26년간의 동거 뒤 결혼을 결심한 두 남자가 결혼에 따르는 여러 복잡한 일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세월이 지나면서 망가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만개하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될 거다. 이전까지는 나도 그런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능하다고 믿게 됐고 믿을 수 있게 돼서 행복하다. 혹시 몰라서 덧붙이자면 현실에서 에릭은 이고르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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