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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숙제할 여유 정도는 줘야지

아동•청소년 연예인에 대한 인권보호방침 시급하다

최근 들어 미성년 연예인들의 데뷔와 출연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그들에 대한 근로환경 개선을 논하는...

얼마 전, TV프로그램을 보다가 게스트로 출연한 한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에서 인상 깊은 내용을 들었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룹이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쁠 테고, 먹고 잘 시간도 부족하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 건, 그들 가운데 막내인 멤버였다. 일본에서는 밤 10시만 되면 자신만 신데렐라처럼 사라진다고 했다. 일본법상 미성년 연예인은 밤 10시 이후 방송 출연을 할 수 없다. 때문에 당시 미성년자였던 그녀도 다른 멤버들과 같이 생방송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중 10시가 되면, 자신은 빠지고 남은 멤버들만 출연했다는 경험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를 털어놓은 프로그램은 심야시간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한국의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최근 들어 미성년 연예인들의 데뷔와 출연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아이돌 그룹이 많아진 까닭일 거다. 그들은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찍고, 때로는 연기도 한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그들에 대한 근로환경 개선을 논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국회에서는 수차례의 입법 발의가 있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서는 ‘대중문화예술인 표준계약서’에 이어 ‘연예매니지먼트 산업의 거래 공정화를 위한 모범거래기준’을 고시하면서 아동•청소년 연예인에 대한 인권보호방침을 마련하도록 권고사항을 설정했다. 과거에는 아역배우들이 야간촬영을 하면서 밤을 새우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학교 수업을 빠지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아역배우의 매니저나 다름없는 어머니들은 종종 아이의 키가 잘 크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한창 성장할 나이에 잠자는 시간에도 일을 해야 하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역배우들의 적절한 휴식과 학습시간, 정서적 안정을 기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다행히 그런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도 미성년 근로자에 대한 보호규정이 있다. 그러나 미성년 연예인들의 계약형태가 ‘근로계약’인지 ‘민법상 계약’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섣불리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해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는 다른 근로기준보다 비교적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현장의 사정 또한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별도의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냥 미루고 볼 숙제는 아니다. 한국의 아역배우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어 TV에 나와 공통된 아쉬움을 토로한다. 친구들과 추억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있었을까? 그보다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이 더 크게 자리한 건 아닐까 싶다. 당장 한국의 영화 현장에서 <해리 포터>의 제작진처럼 촬영현장에 학교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역배우들이 마음 편하게 숙제를 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줘야 할 것이다. 배우이기 전에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미성년 배우에 대한 보호규정은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노동법은 “미성년자는 오전 5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시간 내에서 1일 8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고 규정해놓았다. 또한 연예오락산업에 종사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연령대별로 세분화해서 만든 조건들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노동법도 엄격하다. 16살 이하의 연예인들은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