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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재난, 감각을 흔들다

<카타스트로폴로지>(Catastrophology)

송진희_single channel video_8분_2011.

기간: 12월26일까지 장소: 아르코미술관 문의: www.arkoartcenter.or.kr

2012년은 재난에 관한 전시와 작품, 대화의 자리가 유난히 많았다. 2012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전시기획자 조선령은 ‘재난학’이라는 신조어를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재난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일까. 재난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방금 깔깔 웃었던 웃음을 싹 씻어야만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알고 있다. 똑같은 모니터 화면에서 얼마나 많은 지진, 해일 등의 재난장면이 방송되어 나왔는지. 이번 전시는 재난 대응법이나 재난에 관한 경험담보다는 “오늘날 재난이 가져오는 세밀한 감각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작가들의 눈과 손을 빌린다. 국내 작가를 비롯해 캐나다, 루마니아, 일본에서 건너온 여섯 작가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재난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전시장을 걷다보면 어느새 전시장 입구에서 바라보았던 재난학이라는 문장과 카테고리를 잊어버리게 된다.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들을 바라보면 음험한 기운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재난이어도 재난이 아니어도, 과거여도 미래여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종이에 검은색으로 어떤 여자의 얼굴을 그린 박자현의 작업 <일상인>은 생활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불안한 감정을 보여준다. 얼어붙은 듯한 여자의 눈빛과 곰팡이가 파먹은 것 같은 몸통이 작가가 본 일상적인 인물인 것일까? 전시장에서 재난은 사고나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뿌연 공기나 기후같이 피해갈 수 없는 환경처럼 다가온다. 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영향을 받은 송진희의 비디오 작업 <Eat Into>에서 마주한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보내는 여자에게 흙더미가 밀려오는 장면이나, 루마니아 출신의 미하이 그레쿠의 작업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기가 도시를 뒤엎는 모습 등은 스펙터클 대신에 잔잔한 파국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할리우드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장면은 아닐까? 작가와 전시기획자가 이 자리에서 굳이 ‘재난’을 말하는 것은 이것이 소비되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는 재난의 당사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목격자 혹은 구경꾼일 뿐이다. (중략) 재난과 죽음은 도처에서 우리를 찾아내고 우리를 엄습한다. 일상과 재난의 경계선은 무너져가고 있다.” 전시는 잠들어 있던 여러 감각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