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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2012년 어느 늦은 밤
김선우 일러스트레이션 이선용(일러스트레이션) 2012-12-03

찬바람 불어대는 대한문 앞에서 41일째 굶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정우 아저씨, 정우 오빠, 정우 형, 정우 삼촌, 이런 이름으로 불리면 딱 어울릴 쌍용차노조 김정우 지부장. ‘밥이, 사람이,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이 하늘이고 하느님’임을 너무나 잘 아는 그가 스스로 곡기를 끊은 지 40일이 넘은 오늘.

성실하게 일해온 회사에서 졸지에 해고되어 올망졸망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과 거리에 나앉게 된 수많은 해고노동자 가족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가. 복잡해 보여도 실은 이유는 명백하다. 제 분수보다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고자 하는 ‘소수의 그 누군가’의 탐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씩의 밥그릇을 가지고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열개의 밥그릇을 자기 몫으로 쟁여놓고도 더 많은 밥그릇을 탐하는 ‘그 누군가’에 의해 노사간의 갈등은 언제나 불거진다. 경기가 좋으면 열개의 밥그릇을 늘려 스무개를 가지려 하고, 경기가 안 좋아져 열개의 밥그릇이 아홉개로 줄면, 단 하나의 밥그릇을 보듬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밥그릇마저 빼앗아 자기 금고에 먼저 채워넣으려는 탐심. 심지어 그들은 자기가 가진 밥그릇이 몇개나 되는지 세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이 가지고도 일단 남의 밥그릇부터 빼앗고 본다. 이런 천박하고 끔찍한 탐심을 법이 규제해야겠지만, 법이 권력과 금고의 노예인 경우가 훨씬 흔하니 이를 어쩌나.

오늘은 트윗하는 후배가 눈물을 푹 쏟았다는 멘션을 전해주었다. 정혜신 선생과 ‘와락’을 만들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적 배후이자 든든한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이명수 선생의 트윗글이다. 정평 난 다독가인 데다가 특히 시를 애정하는 심리기획자의 눈썰미가 가슴을 찌른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이영광) 사랑! 김정우 지부장이 곡기를 끊은 지 41일째.

아, 그리고 어제 새벽, 첫눈이 왔다. 흰밥 같은 눈이 펑펑 내렸다. 흰 눈을 바라보며 엉뚱하게도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공중에서 얼어붙어 있던 밥알들은 이제 그만 지상의 밥상 위에 따뜻하게 오시라…. 그렇게 말하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사람이 도심 한복판에서 40일 넘게 굶고 있는데 눈썹 하나 까딱 않는 정치권은 대체 무엇이냐. 도대체 새누리당은 뭐가 무서워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김정우 지부장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기 몸을 죽임으로써 동료들과 그 가족들을 살리고자 한 이런 헌신이 존재하는 참혹한 현실. 바싹 마른 중년 노동자의 몸에 한 방울 한 방울 생명의 수액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그려보며 다시 눈물이 터져나오는 초겨울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