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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카메라 앞에 선 마지막 황제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1880~1989>

고종과 순종, 1800년대 후반,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덕혜옹주, 경성일출공립심상소학교 사진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 소장.

기간: 12월13일까지 장소: 덕수궁미술관 문의: www.moca.go.kr

사진은 누군가의 말처럼 ‘부재증명’이다. ‘거기에 있었다’는, 그러니까 지금은 사진이 찍어낸 상태와 다르다는 걸 말한다.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옷 주름의 상태로 30초 이상 있기는 힘드니까 말이다. 이런 디테일한 세계가 아니어도 나라, 왕, 세계와 같은 거대한 단어들도 사진이 찍어낸 이미지와 현실이 똑같을 수 없도록 방해한다. 사진 속 고종은 더이상 왕일 수 없었고 영화로운 옷을 입고 있던 영친왕, 덕혜옹주 등은 더는 이 나라에 머물 수가 없었다. ‘비운의 왕’, ‘마지막 황제’, ‘비극적 역사’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이 사진으로 구체화되어 눈앞에 선보인다.

전시장의 시계는 대한제국기(1897~1910)에서 잠시 멈춰 있다. 일본과 서구 제국주의의 압력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격변의 시기. 이 시기는 개항과 함께 사진매체가 최초로 유입되었던 때다. 정치적 압력과 누적된 피로 속에서도 사진 속 고종은 덤덤해 보인다. ‘폐하’의 위엄은 표정 속에 없지만 그가 입고 있는 황룡포와 뒤 배경의 사물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임을 증명한다. 고종은 1884년 첫 사진 촬영을 한 이후 사진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86년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사진기를 들고 궁을 찾았을 때에도 그는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며 서적과 잡지 등에 나라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얼굴 사진을 배포했다. 1905년에 촬영된 고종의 사진은 아시아 순방단의 일원으로 내한한 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에게 선물로 하사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이 함께 기획한 전시는 스미소니언미술관, 국립고궁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의 협조로 당대에 제작된 원본프린트와 함께 사진첩과 사진엽서, 신문, 책의 도판 등을 풍성하게 전시한다. “왕후는 가냘프고 미인이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워서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시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책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쓴 명성황후의 이미지도 좇아간다. 현존하는 삽화와 사진이 많은 진위 논란에 휩싸였던 명성황후 증명 사진의 논쟁을 소개하는 것이다. 전시는 왕이나 왕의 가족사진만 보여주지 않고, 그 화면 밖에서 상황을 보이지 않게 주도했을 ‘왕 앞에 선 사진가들’을 드러낸다. 1883년 사진관을 개관한 황철과 1907년 천연당사진관을 연 김규진 같은 사진가가 없었더라면 사진들은 당연히 여기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