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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잃어버린 시간 <리멤버>

종종 영화에서 ‘나치강제수용소’가 등장하는 순간, 거의 어김없이 함께 불려오는 것은 아마도 ‘기억’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험이 기억으로 바뀔 때, 영화는 자연스럽게 플래시백 구조로 현재와 과거를 병치하는 방식을 선택하곤 한다. 안나 저스티스의 영화 <리멤버>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인 영화라 할 수 있다.

1944년 폴란드의 나치수용소, 강제 수감된 폴란드인 토마스(마테츠 다미에키)와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앨리스 드바이어)는 사랑에 빠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한 이들은 수용소를 벗어나는 데는 성공하지만 주변 상황은 나빠져만 가고 결국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헤어진다. 30년 뒤, 아픈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던 한나는 우연히 토마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토마스의 사진을 꺼내보며 과거의 일들을 떠올린다. 영화는 1944년(과거)과 1976년(현재)을 오가며 한나의 기억들을 차례로 불러오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히스테릭해져가는 한나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어느 순간 과거의 기억의 무게가 현재를 압도하기 시작하면 현재의 한나 앞에 문득 과거의 토마스가 찾아오기도 한다. ‘잃어버린 시간’(Die Verlorene Zeit)이라는 독일어 원제가 말해주듯 한나의 잃어버린 시간이 이렇게 영화의 중심에 놓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하지만 다른 ‘과거 찾기’ 영화와 이야기에 흐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긴장감은 소재가 주는 무게에 비하면 다소 약하다. 하지만 수용소를 탈출한 한나가 머물던 폴란드의 집 풍경이나 소련군에 잡혀가는 트럭 안에서 토마스의 형수가 부르던 애잔한 노래는 한동안 시리도록 마음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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