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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세대를 전해 내려오는 고통을 울리고자

한중 합작 영화 <소리굽쇠>의 추상록 감독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유명한 고 추송웅 선생의 아들, 배우 추상미의 오빠이자 연극배우. 직접 연출을 맡은 저예산 3D영화 <>이 지난해 3D 한국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주목을 끈 바 있지만, 아무래도 추상록의 이력은 영화보다 연극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 그가 한중 합작으로 제작되는 <소리굽쇠>의 감독으로 본격적인 영화계 진출에 나섰다. 12월20일 촬영을 시작해 2013년 5월 개봉예정인 <소리굽쇠>는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가 청춘을 보냈던 귀임과, 동경해 마지않던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귀임의 손녀딸 향옥의 이야기다. 두 여인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가 처한 과거와 현재의 고통을 아우르려는 이 영화의 밑그림에 대해 추상록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이 시나리오를 연출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반일 소재인 데다 영화가 품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제작자인 김원동 대표가 권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책(<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을 읽게 되었다. 할머님들의 인생이 워낙 극적인 데다가 나름의 반전까지 있어서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짜인 한편의 드라마 같더라. 이분들의 인생을 스크린으로 옮기지 않으면 어떤 인생을 옮긴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전쟁 성범죄를 다룬 영화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 =이 영화는 위안부였던 귀임의 손녀딸 향옥을 등장시켜 세대를 거슬러 전해 내려오는 고통을 그린다. 향옥을 통해 현재 다문화가정이나 국제결혼 문제 등도 다루고 있어서 단순히 과거 일제 식민지하에서 벌어졌던 일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귀임의 이야기만큼 향옥의 이야기도 영화의 중요한 한 축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소리굽쇠’는 귀임을 거쳐 향옥에게 대물림된다. 이 상징적인 물건을 통해 어떤 점을 보여주려 했나. =영화에서 소리굽쇠는 인물간의 사랑을 맺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또한 잘못된 과거사 때문에 시작된 고통이 지금 세대에도 끊이지 않고 ‘울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랑과 고통,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시나리오에서는 귀임이 일본군 병사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이 그대로 묘사된다. 논란의 여지가 될만한 장면인데. =귀임의 회상은 모두 귀임이 현재 살고 있는 농촌 가옥에서 일어난다. 느닷없이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귀임도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바뀐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과 맥락이 상징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적인 묘사와는 느낌이 다를 거다. 전라장면이나 성행위 신도 되도록 비껴가려고 한다. 의도치 않은 관점을 피하기 위해서다.

-눈에 띄는 캐스팅이 있다. 노년의 귀임 역을 맡은 ‘이옥희’라는 배우다. 찾아보니 조선족 배우로서 중국 정부로부터 최초로 ‘국가 1급배우’의 영예를 얻은 배우더라. =아직도 살아 계시는 장귀임 할머니가 영화 속 귀임의 모델인데, 밀양 출신인데도 옌볜 사투리를 쓴다. 60년 동안 중국에 거주하면서 고향 사투리를 다 잃어버린 거다. 그래서 토속적인 옌볜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조선족 배우를 찾다가 이옥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던 귀임 할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계셨다.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한중 두 나라가 참여했다. 분업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중국은 촬영 전 국가기관으로부터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때문에 중국 영화사의 협력이 절실했다. 현재 심의는 진행 중이고, 촬영이 들어가면 국내에서의 진행과 중국 내 진행을 각국의 회사가 나누어서 맡을 것 같다(한국은 (주)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중국은 베이징흠해길양문화발전유한공사가 맡는다.-편집자).

-최근에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극영화들이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했다. <소리굽쇠> 역시 크게 보면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다. =어떤 트렌드가 생겨서 그리로 몰려가는 것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견해를 가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영화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귀임의 과거는 무척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도 나름 의미가 있을 거다. 내가 연극배우 출신이라 그런지 상징과 은유 같은 것들이 영화 안에 풍부할수록 좋은 영화인 것 같다. 하나의 사물이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을 때 말이다. 물론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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