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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그런데 과연 국가가 못하게 할 권리가 있는가

<자가당착> 제한상영가 취소 행정소송 중인 김선 감독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2011년과 2012년, 두번에 걸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특정 장면을 삭제하지 않는 이상 극장개봉을 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선 감독은 영등위의 이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지난 11월에는 서울행정법원에 <자가당착> 제한상영가 취소 행정소송을 청구하고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도 가졌다. 한달이 지났고 해가 바뀐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런데 왜 영등위가 제 트윗을 팔로하는 걸까요? 저를 감시하는 걸까요? 이상하지 않나요?”라고 너스레를 떨다가도, 진짜 물러설 마음 없냐고 물으면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확고부동하다.

-제한상영가 취소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현재 상황은. =최초 재판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리니까 2013년 5월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비용과 노력이 문제다. 승소한다고 해도 영등위에 재심을 받는 과정이 남아 있다. 사실상 적당한 개봉 시기는 이미 놓친 셈이다. 그래도 지금 바라는 건 한 가지뿐이다. ‘표현의 자유, 제한상영가 철폐.’ 이것만은 제대로 해내자는 거다.

-특정 장면을 삭제할 의사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 박근혜를 빗대어 풍자한 마네킹 장면이 있다. 그게 문제였을 거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가당착>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제한상영가를 받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이 영화가 폭력적이어서 제한상영가라고? <자가당착>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데 청소년 관람불가 받고 극장에 걸린 영화가 수없이 많다. <차가운 열대어>나 <호스텔> 등을 보라. 폭력성은 영등위가 만들어낸 거짓 구실에 가깝다. 영등위는 2차 판정 때 이 영화의 폭력성이 문제라고 했지만, 1차 판정 때는 분명히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가 지나치고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심지어 국정조사 때 영등위 위원장은 이 영화를 왜 제한상영가로 판정했냐고 묻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어떤 개인의 목이 잘리는 장면이 너무 징그럽고 혐오스러워서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 장면이 사실적이고 끔찍하게 느껴진다고 말한 셈인데, 정말 다 같이 그 장면을 한번 보고 싶다. 영상물을 보고 판단하는 분이 맞기나 한 건지 궁금하다. 심지어 영등위 위원장은 이런 말도 했다. 한 개인에 대한 풍자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그게 폭력적이라고. 창작물의 폭력성이란 신체를 얼마나 훼손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그걸 주제적인 측면에 근거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지금까지 제한상영가를 받은 영화들은 전부 폭력성, 선정성 등이 문제였다. 하지만 <자가당착>은 제한상영가를 받은 영화 중에서 정치적 이유로 탄압을 받은 첫 번째 사례다. 특정 정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문제는 이제 표현의 자유의 문제쪽으로 확대됐다. =동료들이 요즘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도서 목록을 짜주겠단다. 감옥 끌려가면 보라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같은 엄청 긴 소설 위주로 추천해주겠다고 하더라. (웃음) 내 말은 이명박을 비판하든 노무현을 비판하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상대가 예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보고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그런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억압하는 게 문제다. 영등위는 지금 한국 관객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건 명백한 우민화다.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풍자하는 건 인격모독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고 하더라. 그는 이미 국가기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비판한다는 건 그의 정치적 역사성, 정치적 위치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니 법으로 제한받을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나? 제발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생존에 절박한 문제가 무더기로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예술계에서의 이런 표현의 문제가 부차적인 문제로 묻히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이 상황에 관한 한 다른 대응책이 또 있나. =심의 문제는 꼭 결판을 낼 것이다. 그 밖에는 인터넷 상영을 한다거나 제한상영가 영화만 모아서 영화제를 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 거다.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연락을 받았다. <자가당착>을 개봉하자는 거다. 2월 또는 그보다 조금 늦게 개봉할 계획이다. 상식적으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 아닌가. 이 영화를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봉하다니. <MB의 추억> <26년> 다 개봉했는데 <자가당착>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영등위에 도대체 일관된 기준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 말 그대로 자가당착이다. <자가당착>이 다른 영화에 비해 더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해서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제한상영가를 준 것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 조롱하고 비판했다. 맞다, 그랬다. 그런데 국가가 그걸 빼앗고 못하게 할 권리가 과연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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