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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존엄을 잃지 않고 그렇게

12월19일 이후. 어떤 이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고 어떤 이들은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그 소리가 마치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증기를 뽑아내듯 귀청을 때리는 것 같습니다. 5년에 한번씩 오는 사생결단의 초대형 이벤트의 결과가 그날 나왔습니다. 지구종말이 온다고 예언했던 마야달력은 왜 틀렸냐며 장난 아닌 불평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도 19일 자정을 넘은 20일 오전 8시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엄지손가락으로 트위터 앱을 계속 새로고침을 하면서 기적적인 0.8% 역전 또는 에라, 모르겠다 63빌딩 위로 반경 5킬로미터짜리 초대형 UFO가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기대 아닌 기대를 했습니다만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과 같습니다. 살면서 투표권을 단 한번도 버린 적은 없습니다만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꿈꾸고 있는 미래와 현실간의 괴리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표를 준 것은 말이죠. 멘탈붕괴라는 시쳇말처럼 트위터의 타임라인에는 슬픔이 가득 차 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20대 개새끼론’처럼 특정 세대, 특정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이들도 있습니다. 2012년에 뜬금없이 세기말의 혼란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책상 앞에서 우두커니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귓가에서 끼익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응? 이게 뭘까, 다시 생각해보니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회색빛 낙진이 해를 가려버린 지구에는 오직 두 종류의 인간만이 살게 됩니다. 살기 위해서 사람을 먹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남자와 남자의 열살 남짓한 아들은 후자에 속한 아니 후자에 속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남자는 항상 꿈꿉니다. 그가 꿈꾸는 것은 예전의 행복했던 삶이 아니라 온전한 죽음입니다. 그는 할인매장에서 쓰는 카트를 수리해서 거기에 생존에 필요한 것을 담아 아들과 함께 밀고 나갑니다. 끼익끼익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카트 바퀴에서 나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어찌보면 남자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쥐어짜는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남자는 결국 지켜냅니다. 소설의 말미에 남자는 죽지만 그의 아들은 계속 후자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싸움에서 졌다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눈물 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거나 이겨내기 위해서 특정 세대와 특정 지역에 저주를 염원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진보의 가치와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 <더 로드>로 가보죠. 남자는 마지막 식사를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어리광을 피워야 할 아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 것은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카트의 바퀴는 찌그러지고 이물질이 껴서 잘 굴러가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도로는 모두 파괴됐습니다. 끼이익 끼이익. 그래도 카트를 계속 밉니다. 힘겹지만 계속 밀고 갑니다. 멈추면 굶어 죽거나 누군가의 먹이가 되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직 인간의 존엄을 갖고 있다고 믿기에 그는 밀고 가는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갑시다. 끼이익 끼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