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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론> 프로듀서 와타나베 시게루
황혜림 2001-03-13

<왕립우주군> <공각기동대> <인랑>, 그리고 <아바론>으로 이어지는 공통점 몇 가지. 각각 미래세계에 대한 독특한 비전을 담아낸 SF물이고 야마가 히로유키, 오토모 가쓰히로, 오시이 마모루 등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아니메 작가들의 화제작이며, 만듦새나 표현력에서 아니메 계보에서 기억될 만한 문제작이란 것 등이다. 또한 이들 일련의 실험들은 모두 반다이 비주얼에서 적잖은 투자를 받았으며, 프로듀서 와타나베 시게루의 안목을 거친 산물이기도 하다.

와타나베 시게루는 지난 20여년간 애니메이션 화제작을 만들어온 반다이 비주얼의 사장 겸 중견 프로듀서. 일본의 유명 완구업체인 반다이가 비디오 및 애니메이션 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만든 영상사업부 반다이 비주얼에서, 비교적 선진적인 시도를 담아내는 아니메 작가들의 배후를 지켜온 제작자다. 83년 말에 막 창립된 반다이 비주얼로 옮겨갈 때만 해도,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보다는 프라모델이나 캐릭터 상품 같은 완구생산이라는 반다이의 본업에 더 익숙한 평사원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OVA 애니메이션 <달로스>를 만들고, 87년에 “로봇도 없고 영웅도 없는” 독특한 SF <왕립우주군>, 88년에 사이버펑크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아키라> 등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두고두고 역사적으로 재평가되는 대작들을 만들면서 점차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서글서글하면서도 빈틈없는 말솜씨, 모범 사업가 같은 외모의 분위기와는 또달리 그에게는 “남이 하지 않은 것, 역사에 오래 남을 작품”을 하겠다는 뚝심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극장판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 오토모 가쓰히로 등의 <메모리즈>, 그리고 OVA <청의 6호> 등 기존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형식의 틀을 비틀고 넓혀가는 실험들을 뒷받침해온 것이다.

실사 촬영 화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최근작 <아바론> 역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구분을 무색게 하는 모노톤의 영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 <달로스>로 만난 오시이와는 꾸준히 감독과 제작자로 호흡을 맞춰온 터다. 오시이 작품을 포함해 흥행이 쉽지 않을 법한 프로젝트, 때로 적자를 감수하게 되는 작품이라도 꾸준히 만드는 고집에 대해서 그는, “언젠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만났을 때, 좋은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몇년 내로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고 격려를 받았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고 말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면 언젠가 팔릴 것이라는, 뜻밖에 우직하게까지 들리는 신념으로 제작에 나서는 것이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이 안 돼 실패작으로 낙인찍힌 <왕립우주군>만 해도 13년 동안 결국 제작비의 3배를 회수했다고. 요즘은 영화만으로 수익을 얻기 어렵지만, 비디오와 DVD, 게임 소프트 등의 부대사업을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대학 시절 영화광도 아니었고, 아니메 오타쿠 출신도 아니지만, ‘일’로 만난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푹 빠져든 그는 오래 남을 만한 작품을 지원해주는 역할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프로듀서로서 어떤 상황에든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가 감독이 능동적이지 못할 때는 힘을 실어준다. “<아바론>의 원형은 사실 전작 <붉은 안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오시이 등 작가의 세계에 대해 깊은 이해를 지닌 ‘배후세력’. “다작은 아니지만 세상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고 평한 오시이처럼 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질적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앞질러가며 장기적인 수익과 재투자를 고민하고, 애니메이션사에 남을 또 하나의 걸음을 제작하는 프로듀서의 업을, 올해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3>와 6월에 나올 데스카 오사무 원작의 <메트로폴리스> 등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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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무비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