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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짧고 빨리, 유체이탈하듯 찌질하게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3-01-29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 상철 역의 연제욱

섹스, 섹스, 섹스. 대학생 상철이의 머릿속을 커다랗게 채우고 있는 단어다. 아직은 사랑보다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나이, 어른스럽고 보수적인 여자친구와의 첫날밤을 위해 온갖 협박을 일삼지만 정작 여자친구와 모텔 갈 돈이 없어 관광지 우물에 쌓인 동전을 파내고 있는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의 상철은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이 얄밉고도 애처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연제욱이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폭력써클>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공공의 적 1-1>)처럼 주로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왔던 그에게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은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한뼘 더 넓혀준 작품이었다.

-완성된 영화는 봤나. =아직 못 봤다. 3년 전(2009년)에 촬영을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가서. 오늘도 시나리오를 다시 읽고 이 자리에 나왔다.

-<공공의 적 1-1>(2008)을 마치고 출연 제의가 많이 들어왔을 텐데, 입대하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것보다 군대에 대한 압박감이 더 컸다. 이걸 빨리 해결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는데 마침 영장이 나온 거다. 매니저 형은 1년 뒤에 가면 어떻겠냐고 만류했는데, 막상 군대를 가보니 나쁘지 않더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야의 폭이 넓어져서 오히려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로맨틱코미디영화는 처음이다. =맞다. 이윤형 감독님도 처음에 “강한 영화에서 강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상철 역이) 괜찮을까요?” 하시더라. 그래서 좋다고 했다.

-상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일단 너무 웃겼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상철이란 캐릭터가 완전 또라이인 거다. (웃음) 정말 재밌을 것 같아 감독님을 만났는데 내게서 “상철이가 좀 보인다”고 말씀하시더라.

-그 말을 되새겨본다면, 어떤 점이 닮았을까. =상철이랑 닮았다고 하면 좀 위험한데…. (웃음)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는 거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 정도가 닮았을 거다.

-<폭력써클>의 학교 짱, <공공의 적 1-1>의 조폭 세계를 동경하는 고등학생처럼 이른바 ‘센’ 역할을 맡아왔다. 이번 작품을 통해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가. =당연히 하고 싶었다. 같은 또래 배우 친구들은 “네가 맡는 역할 정말 해보고 싶어” 하는데 나는 반대로 세지 않은 역할도 맡아보고 싶었거든. 내 이미지가 좀 센가?

-눈빛 때문에 강렬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난 눈으로 연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적 1-1>을 촬영할 때 강우석 감독님도 “너, 연기할 때 눈이 제일 중요한 거다”라고 말씀해주셨고. 그 이후로 눈빛 연기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그러다보니 눈이 잘 충혈되더라. (웃음) 습관적으로 하다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처럼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임하는 자세는 좀 달랐을 것 같다. =최대한 힘을 빼야 한다. 릴랙스하게. 눈으로 집중은 하되 힘을 빼는 게 중요했다. 여자친구에게 간절하게 보일 정도의 눈빛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 그 눈빛의 힘이 대사로 옮겨간 것 같다. 상철은 여자친구에게든 친구에게든 끊임없이 말하는 캐릭터다. =그런가. (웃음) 대사가 정말 많다. 상철이는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하는 애다.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보면서 사람들이 좀 싫어했으면 좋겠다. 찌질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놀기 좋아하고 친구들 좋아하고 이성도 좋아하는 평범한 20대지만, 모든 면에서 좀 과한 느낌이 있는 인물로 생각하며 연기했다.

-상철은 여자친구에게 끊임없이 “자자”고 보채다가 때로는 망가진 모습도 보이는 인물이다. 연기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대학 동기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같이 연습해보자고 했는데, 남자 동기들은 상철이가 너무 재밌다고 하고 여자 동기들은 진짜 찌질하다고 하더라.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신마다 상황에 충실하게, 본능적으로 연기했다. 물론 부담되는 장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신에서 계속 NG가 나면 더 괴롭고 민망했다. 짧고 빠르게 가자는 생각으로, 거의 유체이탈해서 연기했다. (웃음)

-최근에는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시리우스>에 출연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 =캐릭터가 크게 묻어나지 않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너무 세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 그게 휴먼드라마라면 정말 좋겠다. 아무래도 안 해본 역할에 끌리는 것 같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어떤 작품이 됐건 최선을 다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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