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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된 이들, 그리고 추악한 진실 <베를린>
이영진 2013-01-30

북한의 비밀 감찰요원 표종성(하정우)은 러시아, 중동의 무장세력과 무기밀매 거래를 벌이던 중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습격을 받는다. 남한 국정원 요원인 정진수(한석규)는 이들의 거래 현장을 덮치려다 실패하고 이로 인해 상부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한다. 표종성과 함께 무기밀매 사업을 벌이던 주독 북한 대사 리학수(이경영)는 평양에서 새로운 감찰요원 동명수(류승범)가 베를린에 급파되었다는 소식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동명수는 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는 표종성의 아내 련정희(전지현)를 무기밀매 정보를 바깥으로 흘린 내부 스파이로 지목하고, 표종성은 조심스럽게 아내 련정희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베를린>은 남북의 분단, 이념의 대립을 순진하게 끌고 들어오는 첩보영화는 아니다. 정진수는 “아직도 빨갱이 타령한다”고 상관으로부터 질책을 듣고, 표종성은 “넌 기껏 날 감시 대상으로밖에 안 보냐?”고 동료로부터 힐난을 당한다. 표종성의 신념과 정진수의 무기력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들의 시계는 철저하게 과거에 맞춰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체제의 음모를 쉽사리 파악하지 못하고 번번이 속임을 당한다. 정진수가 표종성에게 마지막에 남기는 경멸의 말은 실은 자기 연민의 독백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베를린>이 표종성과 정진수, 두 남자에게만 초점을 쏟는다고 미리 넘겨짚어선 곤란하다. 극중 인물들은 자신이 버려졌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제각기 다르고, 그러한 차이가 이야기의 호흡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더이상 뺏을 것도, 내줄 것도 없는 그들이 피 흘리며 싸울 때, <베를린>은 낙오된 이들의 생사여탈을 누군가가 낄낄대며 관전하고 있다는 추악한 진실을 들추는 것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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