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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한국영화는 왜 항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 펴낸 영화평론가 김경욱

근간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강 펴냄)에서 김경욱은 속악한 현실의 영화는 덩달아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정말 낭패 아닌가. 한국사회를 잠식한 패배의식과 피로는 쉬이 가실 기미가 없으니 앞으로 어떤 나쁜 영화들이 우리를 덮칠 것인지 두려움마저 생기는 것이다. 김경욱은 영화평론가이자 연구자로서 이 책을 통해 한국 대중영화의 배후에 놓인 무의식과 욕망을 읽는다. 사회학도 출신답게 그의 일관된 관심은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를 조감하는 것이다. 명망가 감독들에게도 비판의 메스를 들이민 저자에게 한국사회와 영화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한국영화에 대한 사회학적인 독해를 비평적 방법론으로 견지하고 있는데, 사회학을 전공(연세대 사회학과 졸업)한 것이 영향을 미쳤는가. =사회학을 선택한 관심과 동기가 영화에도 이어진 것 같다. 항상 대중영화에 관심을 갖고, 일정한 흥미를 두고 글을 쓰게 된다. 한편의 영화가 흥행이 될 때는 그 사회를 드러낸다고 생각하고, 그 시기의 흥행작을 분석하다보면 어김없이 그런 증후를 찾을 수 있었다. 봉준호, 임상수 감독,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가 대학 동문이다. 사회학과 출신으로는 내가 제일 못 나간다. (웃음)

-첫장을 1980년대에 대한 독해로 시작한다. <박하사탕> <꽃잎> <화려한 휴가> 등 21세기 한국영화가 1980년대를 기억하는 방식을 첫머리에 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386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그 시대를 다루는 영화에 관심이 많다. 첫장에서 논하는 영화를 찍은 감독들 역시 그 시대를 살았고, 기억하고 있는 연배의 사람들이다.

-책의 일관된 요지가, 한국영화가 1980년대를 기억 또는 재현하는 데 있어서 무능하다는 것이다. 그게 한국영화의 무능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사회의 문제 때문인가. =영화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역사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1970, 80년대가 엇물리면서 박정희의 시대조차 아직 제대로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임상수의 <그때 그사람들> 같은 영화가 그런 인상을 준다. 예를 들면 <JFK>를 만들 때 올리버 스톤은 막 밀어붙였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케네디 암살사건’에 대해 온갖 것들을 다 동원해서 자기주장을 관철시켰다. 그런 태도를 한국영화 안에서 볼 수 없다는 건 퍽 아쉽다. <그때 그사람들> <실미도> <화려한 휴가> 다 마찬가지다. 감독 당신은 이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를 질문하면 영화 안에 답이 없다.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이제 이근안 같은 사람까지 나와서 자신도 역사의 피해자라고 주장하지 않는가. =한국영화는 왜 항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박하사탕>의 영호,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은 역사의 피해자이기 전에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위해한 가해자들이다. 할리우드영화는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철저히 응징한다. 한국에서는 아주 긴 세월 동안 가해자들이 면죄부를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영호나 박두만은 사적으로는 가해자이지만 공적으로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논리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불가항력이라는 논리를 개발함으로써 진짜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까지 뭉뚱그려 다 면죄부를 준다. 공포영화 장르에서 이런 차이는 명확하다. 미국 공포영화, 일본 공포영화와 한국 공포영화의 차이는 한국 공포영화는 항상 용서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전설의 고향>을 봐도 시어머니에게 핍박받아 원귀가 된 며느리 귀신이 복수하러 왔다가 마지막에는 시어머니를 용서한다. 시어머니가 뒤늦게 뉘우치면 절까지 하면서 화해한다. 유독 한국에만 그런 온정주의가 있다. 일본과 미국의 공포영화는 끝까지 복수한다. 상상력의 차이에서 사회를 읽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질문해보자. 봉준호는 장르의 실패를 그리는 감독이다. 범인이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더라도 잡히지 않는다. 장르의 실패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낭패감에 빠트린다. 결국에는 역사적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나 단죄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이야기다. 이건 상상력의 빈곤이 아니라 공동체의 무력을 보여주려는 것 아닌가. =상상력으로도 그런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영화가 현실 원칙을 너무 따라간다. <유령>(1999)에서도 폭탄을 발사해서 일본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영화는 십중팔구 폭탄을 날렸을 것이다. <유령>은 그걸 못하고 스스로 자폭한다. 문제는 그 자폭의 논리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미도>도 마찬가지다.

-봉준호와 이창동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 같다. <살인의 추억> <괴물>에서 <마더>로, <박하사탕>에서 <>로의 변화를 퇴행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인 관심이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화했다는 점에서 퇴행이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은 문제의 출발이 사회적인 이슈에서 비롯되었다. <마더>로 넘어가면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해서 해결도 사적인 것으로 귀결되고, 먹이사슬의 가장 약한 사람에게 죄가 넘어가면서 끝난다. <>도 아이들의 끔찍한 폭력을 방치하는 학교, 공동체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개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런 질문이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해결을 개인에게 돌릴 때 생기는 문제가 있다. <밀양>은 개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는 그렇지 않다. 그 영화는 할머니에게 집중하는데, 손자는 죄가 없는가,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범죄를 계속 덮으려는 가해자 소년들의 아버지들은? 이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을 논하면서 살인자의 시점숏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살인자의 실체를 그릴 의도가 없는 영화에서 살인자의 시점숏을 사용할 때 관객의 위치는 애매해질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의 시점숏을 보면서 1980년대 슬래셔영화의 관습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슬래셔영화에서 관객은 마지막에 가서 살인자를 보게 되는데 그전까지는 살인자의 시점숏이 반복된다. 슬래셔영화와의 차이는 <살인의 추억>에선 살인자가 등장하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독도 범인은 모른다고 하지만 범인의 시점은 나온다. 시선과 관련해서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박두만이 화면 밖을 바라보는 마지막 응시이다. 그 시선은 이근안이 우리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박두만은 이근안 같은 사람 아닌가. 무고한 사람을 고문, 방조해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경찰. 그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봉준호의 혜안으로도 생각된다. 그들이 정말 돌아오지 않았나. (웃음)

-임상수의 영화를 “철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임상수의 영화만이 아니라 한국영화 전반에 깔린 것인데 결국 아버지의 문제이다. 한국영화는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다. 아버지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들은 유아기적 상태로 남게 된다. 아버지를 죽여야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바람난 가족>에선 아버지가 죽는다, <그때 그사람들>도 상징적 아버지를 암살하지 않나. =<바람난 가족>은 아버지가 병들어 죽고, <그때 그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는다. 암살을 모의한 사람들은 “철딱서니없는 것들”로 규정된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죽지만 아버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은 없다.

-서문에서 “영화가 나빠지는 걸 구경한 다음에는 세상이 나빠지는 걸 보게 될 것”이라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나쁜 사회에 나쁜 영화는 필연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좋은 세상은 있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없었던 것 같다. 역으로 세상이 점점 좋아지는데 영화가 나빠지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하스미의 말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나빠지면 영화는 빈곤해지거나 허황되게 변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작가’들의 영화이다.

-지금 대답과 관련해서 김기덕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한국사회가 김기덕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대안이 김기덕이라고 생각하나. =김기덕은 한국에서 너무 폄훼되었다. 그는 중요한 의제를 던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실재를 보여주기 때문에 김기덕 영화는 보는 게 고통스럽다. 그의 영화에는 적어도 가해자를 위한 변명이나 온정주의는 없다.

-김기덕이 긴요한 의제를 던지는 감독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가 한국의 평단이나 관객에게 무시당한다는 말에는 동조하기 힘들다. 김기덕은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화제에 오르고 회자되는 감독이다. 다만 찬사나 호평 일색이 아니라 비판자들도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홍상수를 다룰 때와는 확실히 다른 태도 아닌가. 김기덕은 한국의 영화감독 중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었다. 보통 해외에서 상을 받아오면 평단이 그렇게 욕을 하지 않는다. 신중하게 비판하는데 김기덕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가방끈 때문 아닐까. 결국 이 사람은 무식한 인간 아닌가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린 세계 자체를 비천하게 보는 것이다. 좋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방끈 긴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과 유사하다. 고졸 출신 대통령이라는 거지. 봤더니 별거 아니고 기분도 나쁘니까 쉽게 비판하는 것 같다.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가 2007년 <디워> 현상을 MB 집권의 전조로 해석한 대목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17대 대선 결과를 예고한 징조는 어떤 영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선 전에 책을 쓰려고 자료를 봤더니 <도둑들>이 흥행 1위를 했더라.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했다. <도둑들>을 보면 마카오박이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설명이 안된다. <도둑들>이 하이스트 무비라면 핵심은 마카오박이 어떻게 훔쳤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는 그걸 말하지 않고 관객도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하면 영화 재밌게 봤으면 됐지 뭘 그런 걸 질문하냐고 반문한다. 핵심은 모두 빠졌는데 이미지 메이킹으로 모든 게 봉합된다. 이런 태도가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할리우드영화는 지루할 정도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영화는 가장 핵심적인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뛰는 놈 위에 있는 나는 놈처럼, 마카오박한테 완전히 당한 느낌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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