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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가볍고 유쾌한 처세서 <남자사용설명서>
이기준 2013-02-06

나폴레옹이 했다던데,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고,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그렇다면 삼단논법에 따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여자’일까? 이원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남자사용설명서>는 이에 대해 삐딱한 대답을 내놓는다.

최보나(이시영)는 ‘광고계의 아방가르드’ 육봉아 감독(이원종) 밑에서 5년째 잡일을 도맡아 하는 만년 조감독이다. 남자 스탭들은 질끈 당겨쓴 후드와 그 아래로 삐져나온 지저분한 파마머리의 일벌레 최보나를 본체만체, 예쁘고 가슴 큰 여직원에게 지분거리기 바쁘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존재감 제로’에 도전하던 최보나는 급기야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철수해버린 촬영팀 덕분에 어느 외딴 해변가에 홀로 남겨진다. 그러나 그날 밤, 정체불명의 인생박사 Dr. 스왈스키(박영규)를 만나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를 구매하면서 최보나의 인생은 달라진다. 게다가 위층에 사는 내리막길 한류스타 이승재(오정세)와 묘한 애증관계로 엮이게 되면서, 그녀는 ‘연애’와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조금씩 다가간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온갖 처세서가 유행하는 현 세태를 풍자하면서 형식상 한 단계 더 과감한 도전을 감행한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주요 컨셉으로 내세웠던 기존의 영화들(<싸움의 기술>이나 <아부의 왕>)과 달리, 이 영화는 교습과정과 현실생활을 뒤섞어버린다. Dr. 스왈스키의 강의 화면과 최보나의 일상이 마치 참고서의 ‘이론편’과 ‘실전편’처럼 병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최보나가 맞닥뜨리는 중요한 순간마다 Dr. 스왈스키는 주변 인물 중 하나로 나타나 그녀에게(또 관객에게) 충실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 전체가 한편의 가볍고 유쾌한 처세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이 처세서는 보는 재미도 있다. 광고업계 출신답게 이원석 감독은 꽉 짜인 미장센으로 안정감있는 화면 연출을 뽐낸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적재적소에서 흘러나오는 모그의 세심한 음악 선곡과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이다.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볼만하다. 이시영은 ‘흔녀’(흔한 여자의 준말)와 ‘알파걸’을, 오정세는 ‘니마이’와 ‘쌈마이’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고가며 로맨스와 코미디 모두를 든든하게 해낸다. 굳이 흠결을 지적하자면, 간혹 한 화면에서 ‘끝장을 보려는’ 욕심이 지나쳐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곳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로맨틱코미디 장르 안에서 벌인 자유분방한 시도들이 <남자사용설명서>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여자의 성공은 남자를 경유해야 한다’는 숨은 결론은 그 뒷맛이 씁쓸하다. 이 영화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상의 매 순간 피 말리는 각개전투를 감당해내야 하는 최보나의 성공을 통해, 여성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지독하게 불리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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