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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그녀를 끊을 수 없는 이유
안현진(LA 통신원) 2013-03-08

<그레이 아나토미> <프라이빗 프랙티스> <스캔들> 숀다 라임스

숀다 라임스.

<그레이 아나토미>가 방송을 탄 지 햇수로 9년째다. 아직도 첫 에피소드의 생생함을 잊지 못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귀여운 곱슬머리 남자가 새 직장의 보스라니, 이 얼마나 귀엽고 짜릿한 설정인지, 나중에야 <그레이 아나토미>는 모든 출연진의 사랑놀음을 의학드라마로 포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시즌이 한참 지난 뒤의 깨달음이었고, 그만 보려고 했을 땐 그 막장에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스핀오프이자 얼마 전 종영한 <프라이빗 프랙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개업병원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인데, 병원에서 제일 멋진 남자 의사 둘과 여의사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설정에 이르러서야(그래서 그 여의사는 신혼부부의 신부에게 잘 생긴다는 성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레이 아나토미>와 이 드라마가 자매지간이라는 걸 재확인했다. 이처럼 다른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뒤에서는 시청자의 길티플레저를 충족시키는 건 두 TV시리즈를 만든 크리에이터 숀다 라임스의 특출한 장기이다. 그리고 그 장기는 라임스의 새 드라마 <스캔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스캔들>은 전작과 달리 메디컬드라마가 아니라 정치(가들의 스캔들을 다룬)드라마다. 주인공 올리비아 포프(케리 워싱턴)는 유명인들의 명성을 지키는 위기관리업체를 운영한다. 포프는 본래 백악관 출신으로, 그가 캠페인에 참가해 당선시킨 현 미국 대통령 피츠제럴드 그랜트(토니 골드윈)와 내연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건 사건이 아니라 그저 캐릭터의 전사에 불과하다. 첫 에피소드에서 포프가 담당하는 고객은 대통령의 또 다른 내연녀인데, 그녀는 사건을 의뢰한 뒤 임신한 채로 살해당한다. 시즌2가 절반이 진행된 지금까지 <스캔들>이 다룬 사건 중 굵직한 사건만 줄세워보면 대통령의 외도, 대통령의 또 다른 외도, 대통령 암살사건, 대통령 선거결과 조작 등이 있다. 초반에는 다소 시들했던 시청률도 군침을 돌게 하는 선정적인 사건이 다뤄질 때마다 계속 늘어나 지금은 안정권에 이르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임스 스스로는 자신의 쇼가 ‘길티플레저’라고 명명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길티플레저란 쓰레기 같은 쇼이지만 안 볼 수 없는 경우에나 붙이는 말이지 결코 칭찬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하다면 라임스의 경력에서 도약의 발판이 된 <그레이 아나토미>는 병원이 무대인 소프오페라 정도로 포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라임스의 경력은 <그레이 아나토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에 라임스는 영화쪽에 가까이 있었다. USC 출신으로 촉망받던 각본가였던 그는 영화계에 입문하기 무섭게 최악의 영화에 주어지는 래지어워드의 수상자가 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크로스로드>의 각본을 썼기 때문이다. 그 뒤 그녀가 각본을 쓴 <프린세스 다이어리2> 역시 흥행에 참패한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그런 라임스가 유능한 크리에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효자나 다름없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라임스는 척 로리, 라이언 머피와 함께 TV산업 내에서 활발한 생산성을 자랑한다. 한데 라임스가 이 둘과 차별되는 이유가 있다. 그건 그가 여자라거나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셋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인물의 다양성을 살피고 영화 외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기 때문이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중파 TV쇼의 주연 자리를 흑인 여배우에게 맡긴 숨은 공신이며, 에피소드 안에서 적극적으로 소수자의 권익을 옹호해왔다. 2007년 <타임>이 이런 그를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 중 한명으로 선정한 것은, 시청자의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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