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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 가족 <가족의 나라>
정지혜 2013-03-06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거주하게 된 성호(아라타)는 25년 만에 뇌종양 치료차 일본에 사는 가족들을 방문한다. 일본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단 3개월뿐.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그에게 가혹할 만큼 짧은 시간이다. 게다가 지근거리에는 늘 북한 감시원(양익준)이 있다. 동생 리애(안도 사쿠라)는 이 모든 상황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그저 화가 나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저마다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묻어두는 우물이 있다면, 재일동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의 우물에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잠겨 있다. 그가 만든 두편의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과 <굿바이, 평양>(2011)을 봤다면, <가족의 나라>의 인물과 설정이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같은 이야기의 다른 풀이를 시도한 이유는 뭘까. 이미 말한 것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그러나 꼭 말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아닐까. 카메라를 들고 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양영희 감독은 위협과 부담을 덜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인간적인 불안과 답답함을 보다 분방하게 표출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가슴속에 묻어뒀던 감정들을 길어올린다. 치료에 전념해 북으로 돌아가라는 아버지에게 “정말 그게 다예요?”라고 묻는 성호의 반문이나 이상 때문에 헤어진 가족을 보며 “절대 용서 못해”라고 말하는 리애의 분노는 비로소 입 밖으로 토해낸 응어리들이다. 적대적으로만 보이던 감시원조차 가족을 향한 연민을 품고 있는 인간임을 잊지 않는 영화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족들을 하나씩 비춘다. 리애를 향해 “누구의 인생도 아닌 네 인생 살라”는 성호의 말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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