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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벌이 날다> 감독의 세 번째 질문

<천국에 도착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Bihisht faqat baroi murdagon, 잠셋 우스마노프, 2006년

<천국에 도착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천국에 도착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예술가를 만나보면 대체로 특이한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마음 편하게 친구로 지내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꼭 나쁜 의미로 쓰는 말은 아니다. 혼자 작업하는 게 편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다른 평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감독과 너무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의 직업을 고려해 그게 편해서인데, 한편으로는 그들의 특이한 기질로 인해 불편해지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간혹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을 내놓는 감독들이 있다. 특정 부분이 누구의 손길인지, 누가 전체 분위기에 더 힘을 발휘했는지 궁금할 것 같지만, 그것보다 먼저 호기심이 가는 부분은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이다. 결과물에 스며든 관계의 마법보다 그런 게 더 궁금하다니, 한심한 걸까. 우습게도, 작품이 좋을수록 한심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 민병훈 감독과 잠셋 우스마노프의 데뷔작 <벌이 날다>가 그런 영화였다.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감독이 함께 연출했으니 호기심이 발동할 만했다. 얼마 전 <터치>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자리에서 민병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가진 궁금증을 풀고 싶었으나, 차마 10여년 전 일을 물어보지는 못하겠더라.

우스마노프는 프랑스 자본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오면서도 고향 타지키스탄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2006년에 발표된 세 번째 작품은 아름다운 제목을 지녔다. <천국에 도착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영화의 제목을 한줄 시로 짓는 사람이다)는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스무살 남자 카말의 이야기다. 영화는 임상실험실의 현장 같은 긴 테이크로 시작한다. 의사의 질문에 카말은 우울하게 대답하는데, 긴 시간이 흘러도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카말은 도시로 떠난다. 도시에 사는 바람둥이 사촌이 그의 성불구 증상을 풀어주려고 베푸는 허다한 짓들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해법 없는 문제를 지닌 주인공을 생각하면 정갈한 롱테이크 촬영은 얼핏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카말은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인물이다. 자기중심이 확고한 그는 혼란스러워하거나 다른 길로 빠지지 않는다. 한 여자로 인해 뜻밖의 범죄에 끼어들기도 하지만, 그의 여정에는 어딘가 초월적인 부분이 있다. 그의 눈동자와 그가 발하는 공기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혹시 로베르 브레송을 떠올렸다면 맞다. 우스마노프는 <사형수 탈옥하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브레송이 그러하듯, 우스마노프는 비전문배우의 눈동자에 영화의 영혼을 심어두었다. 그 눈동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 시간보다 번개 같은 각오(覺悟)가 더 필요하다. 그러기를 의도했을 <천국에 도착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는 얄미운 영화다. 삶의 질문을 하나라도 덜려고 애쓰는 판에 거꾸로 풀기 힘든 것 하나를 더해놓았으니 말이다. 이럴 때 예전 같으면 현자들이 쓴 리뷰를 뒤적이며 답을 찾으려 노력했겠으나, 이제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가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지금 답을 모르는 이유는, 그 답이 나에게 과분한 것이거나 필요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어서다. 이래저래 내 주변에는 질문들만 잔뜩 쌓인다. 그럼 또 어떤가, 빗자루로 쓸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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