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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답은 디테일이다
안현진(LA 통신원) 2013-03-29

<내슈빌>의 칼리 쿠리

칼리 쿠리.

한줄 평은 야속하다. 촌철살인의 한줄로 영화나 TV시리즈를 압축해 평하는 신공이야 지갑을 열어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유용한 시스템이겠지만,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영화의 폭이나 시즌을 지나며 짙어지는 드라마 속 캐릭터의 결을 한줄로 평하는 것은 열에 아홉은 부당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슈빌>을 두고 <컨트리 스트롱>이 <스매시>를 만나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내슈빌> 역시 최근 인기있는 트렌드들의 조합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한, 괜찮은 TV시리즈다.

<내슈빌>의 중심에는 두 여자가 있다. 정통 컨트리의 여왕으로 군림해온 레이나 제임스(코니 브리튼)와 버블껌 컨트리로 불리는 대중적인 장르의 신예 줄리엣 반즈(헤이든 파네티어)다. 한때는 인기의 절정에 있었지만 구조적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음악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레이나는 자신의 추락하는 명성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던 중 줄리엣 반즈와 합동투어가 제안된다. 완전히 다른 두 여자는 달갑지 않지만 (여느 드라마들이 그러하듯) 서로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점차 상대방을 동료로서 인정하기 시작한다. 두 여자의 대립구도와는 별개로 레이나에게는 나름의 짐이 있다. 아직 어린 두딸이 있고, 내슈빌의 시장이 된 남편(에릭 클로즈)과 그를 조종하려는 아버지가 있으며, 헤어진 옛 남자친구이자 밴드의 기타리스트 디콘이 있다. 자수성가한 줄리엣 역시 어깨가 무겁다. 엄마는 약물중독이고 자신에게는 스트레스성 도벽이 있다. 음악성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욕심도 뜨겁다. 이렇듯 서로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여자는 <내슈빌>의 이성이자 열정이다.

<내슈빌>은 <델마와 루이스>로 1992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칼리 쿠리가 작업하는 첫 번째 TV시리즈다. <델마와 루이스> 이후 그는 영화감독, 작가, 제작자로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발견되는 여성주의적 경향들 때문에, 처음에 <내슈빌>은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짐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칼리 쿠리는 자칭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슈빌>이 드러내는 강한 여성상과 위기에 대응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방식, 비교적 비중이 적은 남자 캐릭터들을 두고 페미니즘을 들먹이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내슈빌>을 페미니스트 쇼라고 부르는 건 좋다. 하지만 내가 보여주려는 것은 영화나 TV시리즈에서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여자들의 이야기에 아주 조금의 디테일을 더하려는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세한 결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내슈빌>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칼리 쿠리의 에이전시가 새로 계약을 맺은 회사가 하필이면 내슈빌의 유명한 공연장 그랜드 올 오프리의 소유주의 것이었던 것, 게다가 쿠리의 남편은 미국의 유명한 음악프로듀서인 티 본 버넷이다. 쿠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글쓰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슈빌에서 한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은 어쩌면 <내슈빌>의 탄생을 필연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에서 자라고 인디애나의 중소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비교적 대도시인 내슈빌”을 관문으로 더 큰 도시로 나아갈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내슈빌에 머무르는 동안 도시와 도시를 흐르는 음악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내슈빌>은 100%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촬영된다. 그리고 시종일관 들려오는 다양한 컨트리 음악은 <내슈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캐릭터다. 배우들이 직접 불러 더 유명해진 노래들은 공기가 되고 감정이 되어 극 전체에 흐른다. 귀에도 달콤하지만, 가사가 참 좋다. 극중에서 컨트리 듀오를 꿈꾸는 청춘남녀 스칼렛과 거너가 부른 <If I Didn’t Know Better>는 2012년 10월 파일럿이 방영되자마자 단숨에 아이튠즈 음원 순위의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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