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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너무 후져서 예술인 영화
김혜리 2013-04-19

*<웜바디스>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우 출신으로 첫 장편 <디어 한나>(2011)로 연출력을 과시한 패디 콘시다인이 차기작 시나리오 <The Years of the Locust>의 탈고를 트위터로 알렸다. “이제 제작비 2천만달러만 있으면 된다”는 글귀에, 성취감과 근심이 뒤섞인 심호흡이 배어난다.

3/8

열정은 장애를 만나 비로소 로맨스라는 ‘서사’가 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사랑의 걸림돌은 종족이다. 더구나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사랑을 가로막는 방해물인 동시에, 에드워드가 지닌 힘과 아름다움의 근원이기도 하다. 뭇사람이 보기에는 박해받아 마땅한 괴물이지만 내 눈에는 완벽한 왕자님이라. 소녀들에게 이보다 아련하고 치명적인 사랑은 없다. 뱀파이어 남친의 자리에 좀비를 데려다놓은 <웜바디스>는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다. 순백의 낯빛에 유난히 붉은 입술로 밀어를 속삭이며 연인을 품고 날아다니는 뱀파이어와, 푸르죽죽한 피부의 어눌하고 굼뜬 좀비는 러브 스토리의 남자주인공으로서 천양지차다. 하지만 이 불리함은 거꾸로 <웜바디스>라는 기획이 기대를 산 이유이기도 했다. 만약 모든 난점을 무릅쓰고 <웜바디스>가 설득력있는 로맨스를 만들어낸다면 그야말로 쾌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웜바디스>는 스스로 부여한 조건과 정면승부하지 않는다. 영화 시작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알(니콜라스 홀트)의 내레이션은 좀비 알이 건강한 인간 시절과 동일한 감수성과 위트를 가진 존재임을 확인시키고, 좀비스러운 외양은 차차 ‘치유’된다. 즉, 무늬만 좀비였다가 무늬까지 마저 지워지면 그제야 사랑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역경을 극복한 인간과 좀비의 러브 스토리로 보였던 <웜바디스>는 결과적으로 아무래도 좀비를 사랑하기는 좀 곤란하다는 엉뚱한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슈렉>이 마법이 풀린 피오나를 예쁜 공주로 되돌려놓지 않은 건 역시 애니메이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실사 로맨스영화에서 끝까지 좀비의 생김새를 가진 남자친구란 터부일까? <웜바디스>의 세계에서 카스트 최하위층은 좀비화가 장기간 진행돼 해골만 남은 보니들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은 좀비들의 과거이고 보니는 좀비들의 미래지만, ‘종족을 넘은 사랑’이라는 전제를 도중에 폐기한 <웜바디스>는 보니까지 끌어안을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진짜 인간’과, 인간과 비슷해진 좀비가 연합해 ‘진짜 좀비’를 축출하는 제3의 길로 나아간다. 인간 거주지와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 구역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내리는 영화 대단원의 감흥이 솜털보다 가벼운 이유는 그래서다. 영화를 설명한 나의 카카오톡에 한 친구가 대꾸했다. “<트와일라잇>의 벨라가 뱀파이어가 된 것도, 걍 뱀파이어가 인간보다 더 이상적인 인간이라서 그런 거 아님? 두 영화는 같은 결론인 거임. ㅋ.” 손목이 아파 더이상 답문을 보내진 않았으나 <트와일라잇>은 적어도 게임의 규칙을 유지했다는 면에서는 <웜바디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독창적이건 진부하건 일단 하이 컨셉(high concept, 이야기의 전제가 되는 아이디어 하나로 요약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영화)을 전략으로 선택한 영화라면, 행동강령 1조는 컨셉의 일관성 사수여야 한다. <웜바디스>는 이야기 구조가 주제와 상충하기도 했지만, 바이러스의 속성이나 좀비와 보니의 행동 패턴- 어떤 경우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가 등- 도 명확히 관객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창 추격이 벌어지는데도 좀처럼 긴장과 스릴이 발생하지 않는다.

3/9

<웜바디스>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재미난 경향이 하나 있다. ‘비주얼 지상주의’다. 좀비에게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사고능력이 있건 없건, 보니에게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있건 없건, <웜바디스>에서 인간적 존재와 비인간적 존재를 가르는 기준은 순전히 외양과 피의 색깔에 달렸다. 백마디 설득에도 꿈쩍하지 않던 군인들의 총구는 좀비의 몸에 흐르는 붉은 피 한줄기로 거둬진다. 보는 게 믿는 것인 이 세계에서, 감정은 다짜고짜 펌프질하는 심장의 CG로 표현된다. 애초에 알의 사랑이 시작된 계기가 줄리의 옛 남자친구의 뇌를 먹었기 때문이고 뇌를 먹힌 불쌍한 청년은 이후 다시 언급되지도 않는다는 점도 <웜바디스>의 세계관과 썩 잘 어울린다. 사랑은 삼키면 효과를 내는 알약과 같다. 요컨대 감정은 화학물질이 작용한 결과고, 감정의 진실성은 점점 아름다워지는 외모로 증명된다.

3/10

1년 전 <배틀쉽>을 보고 당황한 건 보드게임이 영화로 제작됐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오리지널 말판놀이의 규칙과 거기 기초했다는 영화 서사 사이에 이렇다 할 함수 관계가 없어서였다. <트랜스포머>만 해도 각각의 로봇이 가진 변신술이 그나마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의 모티브였다(사실 <배틀쉽> 게임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장면이 있는 영화는 생뚱맞게도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레스트리스>다. 주인공이 즐기는 놀이로 등장한다). 어쨌거나 우리가 익히 아는 전통적 원작-각색물의 관계는 <배틀쉽>에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는 어디까지나 장난감을 구매할 소비자들에게 더 풍부한 연상을 제공하는 부수적 역할이다. <트랜스포머>와 더불어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의 자산인 <지.아이.조> 시리즈는 액션 피겨가 원안인 만큼 배틀쉽이나 레고에 비하면 스토리를 창출할 잠재력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슈퍼히어로 만화 원작보다는 캐릭터가 약하지만, 장난감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별 무기의 성능이 부각되는 액션영화. 이 정도가 <지.아이.조> 시리즈에 걸린 기대치라 하겠다. 그러나 <지.아이 조: 전쟁의 서막>(2009)과 <지.아이.조2>는 예산(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각각 1억7500만달러, 1억3천만달러)에 값하는 오락성과 시리즈로서 개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지.아이.조2>는 3D 전환을 이유로 지난해 여름에서 올해 부활절로 개봉을 연기했지만 오히려 스톰 쉐도우와 스네이크 아이가 보여주는 동양적 액션에서는 3D가 동작의 연속성을 끊는 느낌마저 준다. 꾸준히 따라갈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도 연작 오락영화로서 결함이다. 추가 촬영으로 어정쩡하게 분량이 늘어난 채닝 테이텀은 애매한 시점에 퇴장하고, 짝패를 잃은 드웨인 존슨은 급격히 지루해진다. 여기에 원군으로 노장 브루스 윌리스가 투입되지만 활약이 미미하다. <레드2>가 아직 대기 중이지만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와 <지.아이.조2>의 2013년은 브루스 윌리스가 액션 히어로의 아우라를 게을리 소모한 해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 유머의 전반적 결핍과 부적당한 위치에 들어간 농담도 <지.아이.조2>를 맥 풀리게 한다. 예컨대 어처구니없는 핵무기 정상회담 신은 <오스틴 파워>에 더 어울려 보인다.

3/11

비용을 치르는 관객으로서 우리는 대체로 완성도가 처지는 영화에 악감정을 품지만 종종 “이 영화는 너무나 철저히 나빠서 사랑스럽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단점이 하도 많아서 급기야 독자적 경지에 이르렀다”는 감상도 비슷한 표현이다. 과연 어떤 경우일까? 영화학자 제임스 맥도웰이 블로그에 올린 설명이 솔깃하다. 학회에서 발표한 소논문 “가치, 의도, 그리고 ‘너무 후져서 예술’의 미학”(Value, Intention and the Aesthetics of ‘So Bad It’s Good’)을 요약한 포스팅에서 맥도웰은 몇몇 조건을 제시한다. 우선 일부러 잘 만들지 않은 영화가 아니라, ‘못 만든’ 영화여야 한다. 주류영화의 코드를 따르려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한데도 그 노력이 체계적으로 철저히 실패할 때 관객은 일탈의 기쁨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가 재연한 비운의 감독 에드워드 우드 2세의 영화가 좋은 예다. 한편 연출의 실패는 미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누가 보기엔 실패인데 다른 평자한테는 예술적 도전으로 보이는 모호한 경우는, ‘너무 후져서 예술인 영화’에 속할 수 없다. 맥도웰은 감독에 대한 친근감이 이 영화들의 부가적 매력이라고 덧붙인다. 투명하게 보이는 의도와 그것이 좌절하는 과정을 일일이 목격한 관객은 마치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교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듯하다. 도대체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몇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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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의 행진

<웜바디스>에는 주인공 알과 친구 좀비들이 일렬횡대를 지어 비장하게 카메라를 향해 전진하는 롱숏이 있는데, <아마겟돈>을 비롯한 마이클 베이 감독 영화에서 영웅들이 출동할 때 꼬박꼬박 등장하는 고속촬영 장면과 판박이다. 단, <웜바디스>의 숏은 슬로 모션 기교를 쓴 것인지, 좀비들의 실제 이동 속도인지 혼동되어 큰 웃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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