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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사랑과 이별의 온도

“저 지긋지긋하게 미성숙한 열정의 시간이 이제 다 지나갔구나. 휴, 다행이다.” 최근 <연애의 온도>를 보고 나오며 나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말이다. 내 경우 삐걱대고 함몰하는 연애 때문에 20대는 물론 30대 중반까지도 정말 한참을 허우적거렸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 내가 했던 가장 못난 짓들이 떠올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김민희가 연기한 장영과 이민기가 연기한 이동희처럼 나도 미련과 상실감 때문에 고함지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스토커처럼 상대방의 휴대폰과 이메일을 열어 뒤를 캐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엉엉 울며 별의별 야만과 주접을 다 떨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겠다고 한밤중에 전화통을 붙들고 말씨름할 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치사하고 비겁해질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오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연애와 이별에 대한 온갖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영화 <클로저>를 보면서 “와, 그래도 우리는 쟤들보다는 낫네” 하며 위로하고, <이터널 션샤인>을 보면서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억지로 지우려고 애쓰지 말자, 바보 같은 짓이다”를 깨닫고, <바이브레이터>를 보면서 “낯선 여자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순하고 착한 수컷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처음 보는 낯선 남자와 섹스하는 모험은 하지 말 것”을 다짐하고, <바닐라 스카이>의 카메론 디아즈를 보며 “동반자살을 도모하여 적을 확실히 죽이지 못할 거면 복수는 아예 꿈도 꾸지 말자. 무엇보다 귀찮고 공이 많이 든다”며 단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도움이 컸다. 불쌍한 여자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남자의 비겁함을 이해하게 됐고, 그렇게 휠체어와 함께 혼자 남겨진 여자도 여하튼 자기 삶을 살고 있다는 데 엄청난 용기를 얻었으니까.

그러면서 한때 없으면 죽을 것같이 사랑했던 연인들이 왜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아프게 헤어지는지 나중에야 겨우 알았다. ‘연애의 온도’ 때문이다. 애당초 뜨겁게 시작한 사랑은 끝날 때도 뜨거울 수밖에 없다. 미지근하게 시작한 커플은 미지근하게 끝낸다. 그 온도에 따라 떠나가는 사랑에게 보내는 저마다의 애도의 방법이 다르다고 할까? 내 경우 영화 속 두 사람처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실컷 바보짓을 한 뒤에야 비로소 이별에 담담해질 수 있었다. 그 난폭한 지랄발광의 시간 자체가 이별과 상실의 치유 과정이었던 거다.

인류학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연인들이 덜 고통스럽고 덜 과격하게 헤어지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던 프랑코 라 세클라가 쓴 <이별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다. 어떤 면에서 <연애의 온도>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책이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별의 과격하고도 그 진부한 방식을 탈피하지 못한 채 ‘새로운 이별의 기술을 고안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기술이 뭔지 저자 자신도 잘 모른다며 다음과 같은 모호한 결론만 내린다. “사랑에 진정한 종말은 없다는 것, 종말 그 자체도 사랑의 한순간이며, 언제나 열려 있어서 다시 시작할 수도, 꿈꿀 수도, 체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스러운 건 고통스러운 여러 차례의 이별이 연인들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거다. 그리하여 내 나이쯤 되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 속에서 평화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