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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3-04-16

<전설의 주먹> 정두홍 무술감독, 강영묵 무술감독

<전설의 주먹>의 드라마를 탄탄하게 해주는 구심점은 결국 액션이다. 철없던 고교 시절의 막싸움의 판타지와 성인이 된 전설의 싸움꾼들의 이종격투기의 긴박감을 모두 표현해야 했다. 시나리오책의 절반을 차지하던 액션장면을 현실화한 것은 정두홍(위 오른쪽) 무술감독과 그와 함께한 강영묵 무술감독의 몫이었다. 강영묵 감독이 촬영 전 액션스쿨에서부터 배우들을 단련시키고 합을 만들어냈다면, 정두홍 감독은 연출의 자리에서 이렇게 훈련된 배우들을 촬영이라는 실전에 적용시키고 화면에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액션 비중이 큰 만큼 더없이 욕심나는 작품이었겠다. =정두홍_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존의 건달들이 나오는 작품은 더이상 안 하고 싶더라. 마침 다른 작품의 촬영과도 시기가 겹쳤었다. 그런데 한번은 술자리에서 한 배우가, 왜 배우들은 아프게 맞는데도 화면에선 그게 표현이 안되냐라는 말을 하더라. 그는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고통스럽더라. 그 말이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계속 나를 괴롭혔고, 결국 이 작품을 하게 만들었다. 영화 안에 싸움장면이 너무 많아서 힘들겠다는 걱정을 하긴 했지만. 강영묵_시나리오 보고 깜짝 놀랐다. 넘기면 넘기는 대로 액션이 계속 나오더라. (웃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정두홍_이 친구가 그런 스트레스를 많이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도 결국은 했다. 어떤 방식의 해결책을 찾은 건가. =정두홍_들어가기 전에 <워리어>를 비롯해서 격투 액션이 나오는 영화들을 모아서 봤다. 대부분 테크닉을 구사하거나 카메라워킹으로 눈속임을 해 화려하게 보여주더라. 강우석 감독님 작품은 원래 그런 게 없지 않나. 정직한 앵글이다. 관객이 봤을 때 정말 아프다라는 걸 느꼈으면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보이고 싶었다. 윤제문이 어금니 깨진 것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촬영하면서 기절을 한번씩은 했다. 적어도 내가 거짓말은 안 한다고 생각하니 슬슬 자신감이 붙더라. 연습하러 오자마자 태권도 보호대 입혀놓고 차게 했다. 그전 같았으면 스턴트맨이 보호대 입고 배우들은 때리는 시늉만 했다. 그런데 이번엔 배우들이 아픔을 느끼도록 실제로 맞고 때렸다. 아역 배우들뿐 아니라 황정민이나 유준상, 윤제문 같은 성인 배우들에게도 모두 똑같이 규칙을 적용했다.

-덕분에 배우들이 “정두홍 감독 독하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강영묵_처음부터 정두홍 감독님이 진짜로 때리기에 ‘저러면 안되는데. 왜 저러시지’ 하고 생각했다. (웃음) 영화는 가짜로 하는 거지 진짜 때리는 건 없다. 연습을 하는데 아역 배우들은 몰라도 성인 배우들은 그렇게 맘 편하게 못하겠더라. 정두홍_실제로 촬영 때 배우들이 버텨야 했다. 진짜 맞으면 그 충격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못 일어난다. 제작여건상 배우가 일어날 때까지 촬영을 마냥 지연시킬 수도 없으니, 미리 연습 때 단련을 시키는 거다. 자꾸 연습하다보면 카메라 앞에서 에너지가 달라진다.

-유준상씨 인대파열은 심각했다. 촬영 중단 위기였는데. 총책임자인 무술감독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었다. =정두홍_그날은 지옥이었다. 촬영날 아침에 준상씨가 몸을 풀다가 다쳤다. 한 장면도 못 찍었는데. 게다가 당장 수술 들어가면 몇 개월이고 아무것도 못하는 거고. 그렇게 된다 한들 준상씨를 탓할 수 있겠나. 앞이 캄캄하더라. 진통제라도 맞고 찍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준상씨도 동의해줬다.

-액션장면 연출은 강우석 감독으로부터 거의 일임을 받아서 진행했다. =정두홍_감독님이 의견을 구하면 조언을 하기도 했지만, 시나리오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촬영 때는 강우석 감독님이 카메라 포지션까지 전권을 일임해주셨다. 황정민 같은 베테랑 배우조차 무술감독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진행하는 걸 많이 보지 못했을 테니 놀랐다. 첫 촬영 때는 너무 힘들었다. 감독님 옆에서 디렉팅을 하자니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하더라. 촬영감독이랑 의견 충돌도 많이 있었다. 두어번 지나고 나선 이렇게 해선 촬영이 안되겠다 싶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들어갔다. 하루 두 게임을 촬영하는데, 액션스쿨에서 할 때랑 막상 현장 가서 보면 상황이 달라지더라. 연습 때 맞춰놓은 합을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현장에서 수정해서 찍었다. 배우들이 그것 때문에 고생이 심했다. 강영묵_계속 상황이 바뀌니 스턴트맨들의 고충도 컸다. 막상 촬영 들어가면 연습할 때보다 더 많이 맞고 꺾이다보니 그들도 얼마나 힘들겠나. 그럼에도 스턴트맨들이랑 연습하면서 합을 맞출 때 현장 가면 바뀔 거다라는 말은 못하겠더라. 내 역할은 현장에서 상황이 바뀌더라도 일단 액션스쿨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연습시키는 거니까. 막상 촬영 때 배우들이 다 바뀌었다며 하소연을 하는데, 그땐 나도 모르겠다고 해버렸다. (웃음) 정두홍_강영묵 감독과는 <뚝방전설> 때도 같이 했는데, 이 친구가 레퍼런스가 좋아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는다. 말하자면 류승완과 정두홍 같은 관계다. 스타일은 정반대인데 합일점을 찾아가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번에도 세부적인 합은 강영묵 감독이 짜고, 내가 전체적인 걸 조율했다. 장기 둘 때 앞에서 보면 안 보이던 게 뒤에서 빠져서 보면 전체가 보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고교 시절의 막싸움과 성인이 된 뒤의 이종격투기 대전은 확연히 다르다. <베를린>의 훈련받은 정예부대의 싸움과는 또 다른 게임이다. 어떻게 연출했나. =정두홍_<베를린>의 액션은 오히려 편했다. 전문가의 싸움은 편하다. 비전문가를 데리고 어느 정도 수준을 높이되 너무 오버페이스로 가지 않게 하는 것. 적정선을 맞추는 게 이번 과제였다. 17 대 1로 맞짱 뜬다는 판타지에서 현실로 오면 배불뚝이의 망가진 아저씨들의 모습,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 장면을 연출할 땐 서울액션스쿨 아이들에게도 네가 가진 기량 다 써라 했다. 홍콩무협영화에서 나오는 과한 동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 과한 동작들은 용인했다. <장군의 아들>이나 <시라소니> 같은 데서 나오는 게 고유의 액션이고, 그 자체가 전설이다. 그분들 하는 액션 스타일을 가지고 왔다. 현재는 8강부터 4강의 긴장감을 살렸다. UFC가 그라운드 기술이 많고 호흡이 길고 끈적거리는데 그런 익숙함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국숫집 사장 되고 나이 들고 배 나온 사람들이 프로처럼 잘할 수는 없다. 배우들은 그라운드도 나오고 그러면 연기할 땐 오히려 편했을 텐데, 난 그렇게 과시용 장면들은 모두 배제하고 갔다.

-생각한 만큼 표현이 됐나. =정두홍_기술시사 보는데 담이 오더라. 내가 찍었지만 편집권이 없으니, 속으로는 진땀이 나더라. 근데 드라마가 담을 풀어줬다. 이 영화는 젊은 친구들이 볼 때랑 아이들이 있는 사람과 나이를 먹은 사람이 보는 게 다 다를 거다. 나도 자식이 있고, 그런 지점에서 진짜 슬픈 장면이 있는데 옆에 액션스쿨 식구들이 있으니 우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눈물을 참느라 진짜 힘들었다. 심의 때문에 아이들이 못 보게 된 게 정말 안타깝다. 고등학생 때 놀다가는 찌질해진다는 걸 이렇게 잘 보여주는 영화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학생들이 봐야 하는 영화다. 강영묵_이 영화의 핵심이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감독님이랑 제일 고민한 장면도 덕규(황정민) 딸이 친구들한테 맞고 온 뒤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거였다. 성인 대 고등학생의 싸움이니 폭력은 안되지 하다가도, 내가 딸이 있고, 딸 가진 아버지의 입장임을 고려하니 그냥 순순히 가면 안되겠더라. 분노가 와닿더라.

-서울액션스쿨은 <짝패>의 공동제작사였다. 이번엔 공동제공이다. =정두홍_강우석 감독님이 기회를 준 거다. 보너스를 주지는 못하니 차라리 투자를 해라. 원금은 보존해줄 테니 돈을 내라 하시더라. 흥행은 될 것 같다고.(웃음) 제작에 관해서야 애초 서울액션스쿨을 액션영화 만드는 제작사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영화해서 번 돈 모두 시나리오 개발에 쓰고 있고, 지금도 2고 3고 나오고 있다. 견자단, 이연걸, 성룡 같은 액션스타도 배출하고 싶고, 극장 상영이 아니더라도 비디오든 DVD든 액션영화도 배급하고 싶다.

-차기작은 윤종빈 감독의 <군도>다. =정두홍_아직 촬영은 시작 전이다. 여기서 강영묵 감독이랑 다 짜고 디지털 콘티 만들고 촬영장으로 간다. <군도>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가 나오는 싸움이라 분위기가 또 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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