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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욕먹고 으쌰으쌰

<런닝맨> 제작부장 이병욱

Filmography

<런닝맨>(2012) 제작부장, <청담보살>(2009) 제작부장 <가벼운 잠>(2008) 제작부장, <조용한 세상>(2006) 제작부 <구세주>(2006) 제작부

“요리는 재료 준비가 절반입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서의 흥미로운 장면 하나. 도전자들이 미션을 받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심사위원의 이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장내는 순식간에 정리된다.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밑 재료 준비를 깔끔하게 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 영화 현장도 마찬가지다. 장소 섭외부터 현장 통제, 하다못해 스탭들의 식당 예약까지, 현장 준비를 도맡아 진행하는 제작부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영화가 진행될 순 없다. “한마디로 촬영 현장의 밑그림을 정리해주는 거죠. 현장의 살림꾼이랄까요.” <런닝맨>의 이병욱 제작부장은 제작부 일을 그렇게 정리했다.

서울 도심 곳곳을 누벼야 하는 영화 <런닝맨>의 경우엔 좀더 특별했다. 풍경이 좋은 장소를 무대로 찍고 싶은 거야 당연한 마음이겠지만 서울 한복판의 추격전이라니, 장소 물색과 섭외를 진행하는 제작부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장소 섭외에 한두번 거절은 기본이고 그때그때 변수도 많아서 통제마저 쉽지 않다. “청계천에 감독님이 일찌감치 점찍어둔 커피 전문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가 워낙에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 꼭 여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사정한 끝에 어렵게 촬영했는데 나중에 스크린으로 보니 잘했다 싶더라.”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각 장소의 에피소드를 말할 때마다 눈에 생기가 돈다. <청담보살>(2009)을 끝내고 잠시 일본 유학을 떠났을 때 주말이면 도쿄 시내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올 만큼 걷는 걸 좋아한다는 그에게 로케이션 매니저를 겸한 제작부 일은 딱 맞춘 옷처럼 어울려 보였다.

배우였던 삼촌의 심부름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알게 된 영화에 매력을 느꼈고, 제대하자마자 영화계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계속 작품이 엎어지는 통에 첫 작품인 <구세주>를 찍기까지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왜 하필 몸은 고되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제작부 일을 선택했는지 묻자 “솔직히 연출자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재능있는 감독이 찍고 싶은 걸 마음껏 찍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며, 고된 일이지만 보람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어렵게 섭외한 장소가 영화에서 근사하게 나올 땐 진짜 뿌듯하다. 도심에서 찍기 어려운 총격 신을 위해 원주의 한 문화극장을 섭외했는데, 처음엔 극장주가 완강히 거절했다. 알고 보니 얼마 전에 멀티플렉스가 생겨 일대의 지역단관 4곳이 한꺼번에 문을 닫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더라. 평생 영사기만 돌리던 영사기사님은 하루아침에 주차장 관리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셨고. 나중에는 마음을 돌려 후배들이라고 많이 챙겨주셨는데 기분이 짠했다.”

한때는 그런 단관극장을 가지고 싶다는 낭만 어린 꿈을 꾸기도 했다는 이병욱 부장은 “제작사 대표가 되는 게 궁극적인 꿈이지만 지금 당장은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꿈을 제시했다. “한회 한회 촬영할 때마다 일반인이 10년치 들을 욕을 한꺼번에 듣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이것만 하고 때려치워야지’를 수십번도 더 되뇌지만, 끝나면 또 금방 하고 싶어지는 게 바로 이 일이다. 내일은 더 힘들겠지만, 그래서 오늘 더 으쌰으쌰!”

전국지도와 아이패드

현장의 길잡이 제작부 스탭들의 필수 아이템은 다름 아닌 전국지도. 지도 한장 달랑 들고 전국 어디든 찾아가던 시절, 손때 묻어 해진 책 모서리가 그간의 고생을 말해준다. 요즘은 아이패드 하나면 다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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