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mix&talk
[최익환] 계속 재미난 실험을 하고 싶다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13-05-17

최익환 원장 시대 1년 반… 한국영화아카데미에는 무슨 일이 생겼나

지난 2011년 11월, 공석이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원장으로 부임한 최익환 원장은 빠른 속도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조직개편과 맞물린, 영화진흥위원회와의 모호한 관계, 혼란과 파행 운영으로 인한 위상 축소, 그리고 부산으로의 이전 등 여러 난제들이 겹치며 잡음이 끊이지 않던 영화아카데미에 들어와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으로 <그녀는 예뻤다>(2008), <마마>(2011) 등을 연출했던 그는 이미 그전부터 초빙교수로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제작연구과정 등 이미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커리큘럼을 효과적으로 계승하면서 다방면의 마스터클래스와 배급을 강화하는 등 영화계와의 ‘스킨십’에 주안점을 뒀다.

차기작을 준비하다 갑자기 ‘소방수’로 들어왔던 그이지만, 이제는 ‘감독’보다 ‘원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어느덧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그를 만나 새로운 방향과 비전에 대해 물었다. 박기용, 장현수 등 이전 원장들과 비교해 ‘가장 젊고 참신한 느낌’을 준다는 인사에 “사실 박기용 원장님도 내 나이 때 들어왔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웃어 보였다.

-무척 혼란스런 시기에 원장으로 임명됐고, 어느덧 1년 반이 흘렀다. 임명 초기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한국영화아카데미’라는 브랜드의 제고다. ‘카파(KAFA)가 뭐야?’라는 물음에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여러 인상들을 확실히 잡아가고 싶다. 그러면서 우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한국 영화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람들을 다시 아카데미로 모이게 하고 싶었다. 여러 갈등 상황을 겪다보니 그게 가장 중요했다. ‘세력화’ 개념이 아니라 뭔가 북적거리는 느낌을 갖고 싶었다. 교수님들과 길게 회의도 하면서 가능한 한 학생들과 함께 오래 학교에 머물길 종용했고, 그 과정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새로운 분들로 구성하면서 ‘나쁜 짓’도 좀 했다. (웃음) 모든 학생과 선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수요일의 크리틱 시간을 좀더 활성화했고, 교육제작팀과 배급팀을 강화해 기존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을 보다 안정적으로 계승하려 했다.

‘학구적’으로 변했다?

-이전 원장들과 비교해 젊고 참신한 느낌도 있지만, 주변 영화인들이 말하길 영화아카데미가 보다 ‘학구적’으로 변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영화인교육센터’가 ‘카파 플러스’로 이름을 바꿨고 곧 ‘카파 Zine’도 창간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위기설은 늘 있어왔고 영화아카데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 2년간은 서로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여러 개별사업의 중요성은 매번 변화를 겪어왔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다지는 방안은 역시 ‘교육’이다. 다른 교육기관과 차별화되는 영화아카데미만의 장점이라면 역시 그런 한국 영화계를 위한 ‘서비스’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교육센터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지식 공유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면서 ‘업계 사람들과 함께 가자’는 게 초점이다. 마스터클래스나 워크숍 등을 시리즈로 기획하면서 평소 만나기 힘든 스탭들, 현장의 보다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영화인들 위주로 갔다. 뭔가 의례적인 ‘행사’ 같은 느낌을 싹 지우고 싶었다. 어렵게 초청한 사람들을 붙잡고 뻔한 얘기나 들어서는 안된다. 그 사람만의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매번 부딪혀오는 ‘결정’의 순간들을 어떻게 돌파했는지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겠지만, 정말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질문하고 캐내려고 해야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황색눈물> 등을 만든 이누도 잇신 감독의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해외 영화인들을 포함해 초청자 명단이 굉장히 다양해졌다. 앞으로 또 어떤 이들을 초청할까 궁금하다. =당장 5월에는 정두홍 무술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린다. 몇년 전 영화아카데미 연출전공 25기이고, 장편제작연구과정 3기인 윤성현, 조성희 감독 등이 서울액션스쿨에 가서 하루 종일 무술감독들과 직접 액션장면을 짜보는 워크숍을 한 적 있다.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굳이 액션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는 그들의 철학과 작업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는 기회였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그런 식으로 안면을 터놓으면 이후 연락을 주고받기가 편해지는 측면도 있다. 말하자면 그런 과정들이 영화계와의 ‘스킨십’인 거다. 6월에는 칸영화제 프로그래머인 크리스티안 전(Christian JEUNE)을 초청해 ‘영화제’에 대한 얘기를 나눌 계획이다. 이전 마스터클래스와는 굉장히 다른 컨셉이긴 한데, 영화제의 기능과 칸영화제의 지향점 등을 들으면서 각자의 고민과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다음으로는 7, 8월경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늑대아이>(2012) 등을 만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초청하려 한다. 영화아카데미에서 꾸준히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디쪽은 투자받기 힘든 환경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어떻게 자기의 설 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지, 그 힘든 과정 속에서도 자신의 개성과 철학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었는지, 아카데미 학생들은 물론 한국의 젊은 애니메이터들에게 무척 중요한 얘기를 들려줄 것 같다.

-2005년 신설된 PD전공과 이후 만들어진 시나리오전공이 다시 연출전공으로 통합됐다. 그런 잦은 변화로 인해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학제는 통합되는 반면 마스터클래스의 분야는 넓어지고 있다. =연출자에게는 보다 다양한 능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연출전공으로 통합하며 ‘필름메이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까, 하는 생각도 했다. 프로듀서나 시나리오 전공자들이 그저 연출 전공자들의 ‘보조’ 역할을 한다는 시선이 싫었다. 얼핏 보면 사람 대 사람의 작업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업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출전공으로 통합했다. 연출 전공자들도 PD 과목을 들어야 하고, 현장에서 직접 정산도 해야 한다. (웃음) 마스터클래스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두홍 무술감독, 크리스티안 전 프로그래머 외에 특수효과에 관한 한 대표적인 장인인 데몰리션의 정도안 대표 등도 초청할 생각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글로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특수효과로 만들어지는 비의 종류에 따라서도 각양각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랑비든 폭우든 실제로 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학생이라면 그들을 향해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하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더불어 부산 이전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영화인교육센터를 제외하고는 10월 말에 이전하기로 돼 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공청회 때 도출된 얘기들을 종합하면 ‘내려갈 거라면 잘 내려가자,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내려가자’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내려갈까’에 대한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역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학생들이 부산까지 오려고 할지, 교수진과 학생들의 숙소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다. 우리가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교육과정의 지속성이 문제다. 그것은 영화아카데미의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인데 당연히 등록금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런데 아직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갈 데가 없다. (웃음) 다행히 부산시에서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하면서 숙소 등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기로 했다.

카파(KAFA)의 브랜드 위상은?

-영화아카데미가 잡음을 해소하며 빨리 안정을 찾은 데는 영화진흥위원회 김의석 위원장과의 ‘공생’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이는데, 김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혹시 그 이후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나. =이것 참 곤란한 질문인데(웃음), 일단 갈등조정 상황에서 ‘봉합’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쨌건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유연하게 지난 1, 2년을 보내왔다. 조용조용 흘러오면서 부드럽게 왔고 영화계의 부정적인 시선들이 단기간에 무마됐다. ‘궁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고, 얘기한 대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그건 아마도 ‘글로벌’이라는 화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김의석 위원장은 거기에 전력을 경주했는데, 물론 누가 위원장이 된다고 해도 그 화두는 유효할 것이기 때문에 이후 어떤 분이 위원장이 되어도 핵심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부분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김 위원장이 그렇게 ‘글로벌’과 ‘온라인’을 화두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해외영화제와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해외영화제에서도 이제 우리 아카데미 작품들이 수상을 거듭하면서 ‘카파’라고 하면 다 안다. 장편제작연구과정으로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수시로 문의하고 체크하고 있다. 그 다져진 바탕 위에서 더욱 착실히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난 2월부터 LG유플러스의 ‘테마영화관’에 ‘KAFA FILMS’ 섹션을 만들어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들을 VOD로 제공하고 있다. =연간 100여편 이상의 독립영화가 시장에 나오지만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는 경우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영화아카데미가 좋은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이나 배우들의 데뷔 전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외 영화제 수상작까지 지속적으로 작품들을 배급할 생각이다. 플랫폼의 권위주의가 상당하고 극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배급 실험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KT올레와도 VOD 서비스를 논의 중인데, 처음부터 ‘돈은 안 벌어도 됩니다’라고 말하니 의아하게 생각하더라. (웃음) 우리의 목적은 개성있는 젊은 감독들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고, 그들이 산업의 거친 현장으로 나가 배우고 익힌 대로 자기 플레이를 펼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게 비록 대중성은 떨어진다 할지라도 쉬지 않고 지원하는 게 우리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관객도 이른바 ‘다양성 영화’의 존재나 가치에 대해 학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전 박기용 원장이 꾸린 장편제작연구과정은 어느덧 한국 영화계에 매번 신선한 충격을 주는 중요한 브랜드가 됐다. <짐승의 끝>(2010)의 조성희 감독은 <늑대소년>(2012)을 만들었고 <파수꾼>(2010)의 윤성현 감독 역시 신작을 준비 중이다. 최근 개봉한 <설인>과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 외에도 4편의 장편영화와 2편의 애니메이션이 후반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부임 이후 선발부터 제작까지 직접 손을 댄 작품들이 이제야 나오기 시작한 셈이다. =내가 손을 댄 건 없고,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웃음) 그 여섯 작품 모두 현재 편집심사 단계에 있는데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는 디시인사이드의 격투기 갤러리를 통해 ‘현피’ 뜨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 마이너한 문화를 잘 그렸고 지도를 맡은 정지우 감독이 “당장 상업영화시장에서 극장개봉해도 주목받을 수준”이라고 했다. 엄태화는 지난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숲>으로 ‘절대악몽’ 부문에서 작품상은 물론 심사위원 만장일치 전체 대상을 받았던 친구인데, 늘 동생인 엄태구를 배우로 기용해 작품을 만든다. 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웃음) 역시 지난해 미쟝센에서 <이기는 기분>으로 ‘희극지왕’ 부문 작품상을 탄 한승훈 감독의 <이쁜 것들이 되어라>는 한 명문대에 들어간 30대 초반 ‘찌질이’의 코미디인데, 배우 정겨운의 ‘발견’이 될 것 같은 영화다. 김정훈 감독의 <들개>는 고등학교 시절 수제 폭탄범이었던 친구가 나중에 대학원에서 자기와 비슷한 반항아를 만나 다시 그 폭탄으로 인해 겪는 일을 그린다. 다들 6천만원 예산인데 6억원처럼 만든 영화라고 재밌어했다. 유원상 감독의 <보호자>는 유괴범들이 서로 양쪽 부모를 유괴하면서 벌어지는 스릴러다. 어둡다기보다 보다 장르화된 탄탄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리고 두편의 애니메이션은 박혜미 감독의 <화산고래>와 허범욱 감독의 <창백한 얼굴들>이다. 전자는 <모비딕> 이야기를 요즘처럼 변형한 이야기라 보면 되고, 후자는 색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남자가 도망다니며 겪는 애니메이션이다.

핵심은 ‘개성’의 발굴?

-당신의 색깔을 규정하자면 여러 차례 스스로 언급한 대로 ‘실험’이 아닐까 싶다. =이제 겨우 1년 넘었는데 한 5년 정도 지난 것 같다. 매일 현장에 나가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원장으로 있으며 남는 시간에는 내 시나리오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완전히 불가능이다. (웃음) 안정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일을 맡은 게 뭔가 도전할 거리들을 막 던져줬던 것 같다. 이전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도 22기 학생들과 늘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게 좋았다. 거의 모르모트가 된 기분으로 막무가내로 ‘1시간 글쓰기’ 같은 걸 했던 기억도 난다. 서로의 글에 대해 막 비평하고 그날의 1등도 뽑고. (웃음) 뭐라고 할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뭐든지 ‘재미’가 없으면 못하겠다. 다양한 배급 실험과 부가판권시장에서 가치를 높이는 것, 그리고 카파 플러스를 통한 광장교육 등 계속 재미난 실험을 하고 싶다. 물론 그 핵심은 ‘개성’의 발굴이다. 천만 영화의 계속적인 등장, 전체 관람가 영화의 득세 등 한국영화의 ‘획일화’를 걱정하는 시선들이 많은데 그 탈출구는 역시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영화아카데미가 앞장서야 한다.

관련인물